한국 자동차 부품 산업에서 일명 '좀비기업'으로 불리는 한계기업이 다시 증가했다. 내연기관 부품업체는 도태되고 전기차 부품업체도 캐즘에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면서 부품업계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단순 기존의 세금 퍼주기식 '생존 지원'이 아닌 연구개발(R&D) 중심 기업에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융합기술원이 23일 국내 부품기업을 14개 품목으로 세분류해 재제조 부품을 제외하고 분석한 결과, 국내 부품기업 수는 총 1466개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한계기업은 2022년 417개에서 2023년 448개로 약 7.4% 증가했다.
부품기업 한계기업 수는 2020년 523개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지만 2023년 다시 증가한 것이 특징이다. 전기차 캐즘을 겪으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재무적으로 취약한 일명 '좀비기업'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내연기관·전기차 한계기업 '동반' 증가= 문제는 내연기관 중심의 부품업체가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전기차 산업이 캐즘을 겪으면서 전기차 부품기업들의 한계기업 수도 함께 늘어났다는 점이다.
부품별로 살펴보면 '자동차 엔진용 신품 부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전체 117개 부품기업 중 한계기업은 2022년 32개에서 2023년 37개로 늘어났다. 매출이 코로나19로 많이 감소했다가 기저효과에 따라 회복됐지만 다시 감소세로 전환한 것이다.
전기차 부품을 대표하는 '자동차용 전기장치 제조업'은 전체 5개 기업 중 한계기업이 2022년 2개에서 2023년 3개로 증가했다. 이들 5개 기업의 부채비율은 2022년 114.9%에서 115%로 증가하고 유동비율은 95%에서 94%로 낮아지고 있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 부품을 대표하는 '자동차용 신품 전기장치 제조업' 역시 전기차 산업의 수요 둔화 영향을 받았다. 같은 기간 전체 44개 기업 중 한계기업이 12개에서 21개로 약 75% 증가했다.
995개 부품업체가 속한 '그 외 기타 자동차 부품 제조업'의 한계기업도 279개에서 299개로 증가했다. 특히 이들 기업의 미래차 사업 현황을 반영하지 못한 채 기타 부품으로 분류되고 있어 국내 자동차 산업의 통계 체계를 미래 모빌리티 산업 발전에 맞춘 개편이 시급하다.
◇"모든 기업 살릴 수 없다"·R&D기업에 집중 투자 필요=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의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단순한 생존 지원이 아닌 필요한 기업에 적절한 R&D 자금이 공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기업을 살릴 수는 없어 미래차 산업에 대응할 수 있는 R&D 중심 부품기업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계기업에 무작정 국민 세금을 지원하면 경쟁력이 낮은 기업이 생존하면서 산업 구조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현재 대기업 주도형이다. 현대차그룹의 투자 점유 비중은 2022년 66.2%에서 2023년 75.4%로 늘었다. 2023년에는 처음으로 계열 부품 5사의 R&D 투자 비용이 비계열 부품사 265개사를 추월했다.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타이어와 배터리업계의 꾸준한 R&D 투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국내 타이어 3사를 비계열 부품사에 포함할 때 투자 총액이 2조5786억원으로 계열사 투자액을 상회한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지난해 R&D 투자액도 전년(2조2040억원)을 뛰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항구 아인스 연구위원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제대로 흘러가야 자동차 부품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대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들까지도 전문 인력 이탈이 증가하고 신규 채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자금 부족으로 기술 개발과 인재 확보가 어려워지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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