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되고, 당의 지지율도 정체현상을 보이자 비명(비이재명)계 대권 잠룡들이 앞다퉈 쓴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 대표와 친명(친이재명) 지도부가 중도·무당층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 틈새를 공략할 모양새다. 비명계 잠룡들이 대중 민심을 기반으로 이 대표 체제가 굳어진 당내에서 세를 결집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재판부는 지난 23일 열린 첫 재판에서 "다음 달 26일 결심 공판을 하겠다"고 했다. 통상 결심 공판 이후 한달 뒤 선고 기일이 잡히는 만큼 3월 말 2심 선고가 나올 수 있다. 재판을 지연시켜 2심 선고 전에 대선을 치르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사실상 물건너 간 셈이다.
이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이 2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면, 이 대표의 대권가도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3심이 나오기 전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이 문제가 계속 뜨거운 쟁점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을 밀어붙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유에서 내란죄를 삭제한 것도 헌재의 결정을 앞당겨 이같은 사법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최근 민심도 이 대표에게 녹록치 않다. 탄핵 바람을 타고 질주했던 민주당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은 상승하면서 당 지지율에서 밀리는 상황이 됐다. 독주하던 이 대표 지지율도 비호감도가 높아지면서, 여당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선 대등한 레이스를 펼치는 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틈타 비명계 잠룡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야당에 유리한 대통령 탄핵 정국인데도 여론이 이 정도라면, 이 대표만으로는 대선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고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과는 다른 여론 추이도 이들에게 명분이 되고 있다.
중도·무당층 민심 잡기가 이들의 주요 전략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 국면을 무사히 넘기는 데 급급한 친윤(친윤석열)계 국민의힘 지도부나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넘기는 데 급급한 민주당 지도부나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다.
메시지 곳곳에도 이런 인식이 반영돼 있다. 주로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사고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는 다원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김경수 전 경남지사)" , "민주당은 신뢰의 위기(김동연 경기지사)", "제1당인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쳤다(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메시지를 연일 내며 이 대표의 일극체제를 겨냥하고 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도 SNS를 통해 "정권교체로 가는 길은 이재명의 길뿐만 아니라 다양한 길이 있다"고 주장했다.
활동폭도 부쩍 늘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 비명계 총선·낙천자 중심 원외 모임인 '초일회'와 만남을 갖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세 규합도 시작한 모양새다. 김경수 전 지사는 지난 24일 박광온 전 원내대표가 설립한 '일곱번째LAB 창립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했고, 김동연 지사는 친문(친문재인)·친노(친노무현) 세력 다수를 경기도정에 영입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원외뿐만 아니라 원내 인사와도 접촉면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중도층이나 보수층 민심을 들어보면 비명계 후보들을 더 안정적인 인물로 보고 선호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며 "명절 이후 이들이 여론조사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비명계 잠룡들이 대부분 원외이다보니 주목도를 높이고, 세를 규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민들과 설 귀성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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