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3사가 전기차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국면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 부진을 감수하면서까지 R&D에 공을 들인 것은, 중국 CATL 등과의 기술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담겨있다.
30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약 1조3000억원을 R&D에 투자했다. 지난해 매출(16조5922억원)이 전년 대비 22.6% 감소한 상황에서도 R&D 투자는 약 14.4% 증가했다.
삼성SDI는 3년 연속 R&D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22년 1조764억원에서 2023년 1조1364억원으로 늘렸고, 작년에는 1조3000억원의 R&D 투자를 단행했다. 삼성SDI는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와 리튬인산철(LFP) 등 차세대 제품과 기술 투자에 집중하는 동시에 글로벌 연구기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김윤태 삼성SDI 경영지원실 부사장은 지난 24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기조 하에 투자 계획을 조정하고 있다"면서도 "전고체, LFP, 46파이 배터리 같은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는 기존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R&D 투자비용도 2023년 1조373억원에서 지난해 1조1000억원 이상으로 약 6%가량 늘렸다. 매출에서 R&D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3.1%에서 약 4.3%로 상승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R&D 투자액은 역대 최대치다. 2022년 8760억원에서 2023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캐즘에도 투자를 확대한 것이다. 올해 역시 김동명 대표가 '엔솔 2.0'의 기반을 다지는 해로 선언한 만큼, R&D 투자는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파우치형 배터리에서 보유한 다양한 기술을 기반으로 핵심 고객사인 GM과 전기차용 각형 배터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리튬황 전지,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K-배터리' 3강의 마지막 한 축인 SK온은 지난해 캐즘 직격탄으로 투자 여건이 악화됐음에도 지난해 R&D 투자액은 전년보다 줄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R&D 투자액은 3600억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2.33% 수준이다.
SK온은 최근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 성과를 잇따라 내놓으며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알렸다. 김진호 한국세라믹기술원 박사 연구팀과 진행한 연구인 초고속 광소결 기술을 적용한 고분자-산화물 복합계 전고체 배터리 제조 공정 고도화 기술은 'ACS 에너지 레터스'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으며, 이규태 서울대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한 '망간리치 양극재의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적용 가능성 분석' 결과도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스'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업황이 부진하면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고 R&D 투자는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난해는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오히려 공격적으로 연구개발을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