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MBK파트너스(이하 MBK)에 '대타협'을 제시했지만, MBK가 사실상 이를 뿌리치면서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최근 열린 임시주주총회는 고려아연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MBK의 법적 대응을 예고한 만큼 경영권 분쟁은 당분간 안갯속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MBK는 지난 30일 입장문을 내고 "영풍의 고려아연에 대한 의결권 제한 목적으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대놓고 만든 출자구조가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를 제한하는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첫 번째 사례"라고 밝혔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 입장에서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상호출자제한 제도를 도입한 이래, 해당 제도의 근간을 침해하는 탈법적 시도를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된 셈"이라며 고려아연에 대한 조사와 제재 등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임시주총 전날인 지난 22일 최 회장 측이 지배하는 영풍정밀이 자사와 최씨 일가가 보유한 영풍 지분 10.33%를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 장외거래로 매도해 '영풍→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H)→SMC→영풍'의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했다. 상법상 고려아연 지분 25.4%를 보유한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되면서, 임시주총은 고려아연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후 고려아연은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MBK에 대타협을 제안했다. 이날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는 "MBK가 대타협을 받아들인다면 함께 회사의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며 "MBK가 원한다면 경영 참여의 길도 열어놓겠다. 이사회를 MBK에게 전향적으로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고려아연의 미래 3대 신사업(재생 에너지·그린수소, 폐기물 리사이클링, 2차전지 소재사업)인 트로이카에 대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데 MBK와의 협업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미래 방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MBK는 "SMC의 영풍 주식 취득은 외견상으로 공정거래법 제22조가 지금껏 규제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던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처럼 보이지만, 그 실질은 전례없는 '상호출자 금지에 대한 탈법행위'"라고 주장해 고려아연의 제시안을 사실상 거절했다.
MBK 관계자는 "이번처럼 대놓고 상호출자 제한 규제를 회피한 사례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며 "최 회장의 탈법적인 출자구조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향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지배주주들은 동일한 방법으로 자신의 지분을 지배하는 회사에 매각해 현금화하면서도 당초의 지배력은 그대로 유지하는 수단으로 해외 계열회사를 활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박기덕 대표는 24일 기자회견서 "MBK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둘 중 하나는 죽고, 상처를 입고, 다치는 과정 등의 소모적인 전쟁을 원한다면 전 임직원과 기술진, 노조는 절대로 그 전쟁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생의 길은 무엇인지 공멸은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해 달라"고 강조했다.
또 SMC의 영풍 지분 취득에 대해서는 "SMC는 고려아연의 100% 자회사로, 고려아연 경영권이 사모펀드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분을 취득한 것이다. SMC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MBK 측에서 고발하겠다면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박기덕(오른쪽) 고려아연 대표이사가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