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주] 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개인 투자자고, 매일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울고 웃습니다. 일반 투자자보다 많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바를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삼성전자가 주주들에게 베푼 아량은 3조원이 끝이었다. 올해까지 사들인 10조원어치 자사주 중 대부분은 직원들의 성과급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이사회는 향후 1년간 자사주 매입에 1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4만전자'까지 내려앉은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다급한 결정이었다.
삼성전자는 2018년 가지고 있던 자사주를 모두 소각한 뒤 이번 결정까지 한 번도 자사주를 사들인 적 없다. 반도체 사이클에 따라 2019년 4만원을 찍었던 주가는 이후 자사주 매입 없이도 우상향했고, 한때 9만원선을 넘봤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주가가 급격하게 하락했고, 연말이 다가오며 주가가 반토막나자 6년 만에 '자사주 매입'을 꺼내들었다. 자사주 매입 발표 이후 주가는 5만원대를 회복했지만, 드라마틱한 상승은 없었다.
자사주 매입 발표 이후 삼성전자는 착실하게 자사주를 사들였다. 현재까지 사들인 주식은 4480만주, 2조4468억원어치다. 우선주도 617만주, 2817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삼성전자는 사들인 자사주 중 3조원은 다음 달까지 전량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나머지 7조원어치에 대한 쓰임은 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임원의 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하기로 결정하며 그 쓰임새가 어느정도 정해졌다. 상무는 성과급의 50%, 부사장은 70%, 사장은 80% 이상을 자사주로 받아야 한다. 등기임원은 100%다. 여기에 해당하는 인원은 작년 6월 기준 총 1170명이다. 부사장급 이상 임원들은 지난해 적게는 10억원에서부터 많게는 50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아갔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성과급에 들어가는 돈 중 일부를 자사주 매입 금액으로 메울 수 있게 됐다.
내년부터는 일반 직원들까지 자사주 성과급 지급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1조원에 달하는 장기성과급 충당금을 쌓아놨지만, 이 돈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하면서 '책임 경영'이 강화될 것이라 홍보했다. 맞는 말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반도체 부문 경쟁사인 SK하이닉스도 성과급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고 있다. 한화그룹도 임원이 성과급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자사주 성과급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회사 뿐이다. 임원은 자사주를 받은 뒤 향후 1~2년간 주식을 매도할 수 없어 돈이 묶인다. 또 올해 지급이 약정된 뒤 주가가 내리면 받을 수 있는 주식도 줄어든다.
임원은 회사에 묶여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치자. 가장 큰 문제는 일반주주다. 삼성전자가 말한 '책임경영'이 '자사주 소각'보다 주주환원 효과가 높을까. 아니 주가 부양 효과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회사가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뒤 주가가 오르는 것은 자사주를 소각할 것이란 기대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소각을 통해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든 만큼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가치는 높아진다. 자사주의 배당권이 사라지는 것도 주주환원율을 높이는 요인이다. 배당금은 그대로인데 받는 주주가 줄어드니 배당금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소각과 보유가 아니라 이를 다시 임직원에게 나누어 준다면 이는 더 이상 자사주가 아니다. 시장에는 다시 삼성전자 주식이 늘어나고, 배당금도 다시 같이 나눠야 한다. 결국 삼성전자가 발표한 10조원 자사주 매입이 주가에 미치는 효과는 지금까지 소각이 결정된 3조원에 한정된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 없는 장사다. 주주환원을 위해 노력한다는 홍보효과도 거뒀고, 성과급으로 나가야 하는 현금도 아낄 수 있다. 이미 300조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더 불릴 수 있게 됐다.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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