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미국 빅테크보다 낮은 비용으로 챗GPT 수준의 AI 모델을 내놓은 것을 두고, 일부 외신은 물론 전문가들도 반도체 수출규제 '무용론'이 입증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딥시크의 주장대로 범용 반도체로 고성능 생성형 AI 서비스를 만든 게 사실일 경우, 관련 기술 개발 경쟁에 한층 불꽃이 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딥시크 쇼크'가 AI 투자를 빠르게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 규제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 복수의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딥시크의 이번 발표를 두고 현지 전문가들은 '중국이 생성형 AI 개발 패러다임을 바꿨다' '미국의 규제가 중국의 AI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등 여러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 등은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인 엔비디아 H100과 같은 고사양 AI 반도체를 암시장에서 가져왔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머스크 CEO는 27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 계정에 딥시크가 엔비디아 H100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량 보유하고 있다는 AI 데이터 기업인 '스케일AI'를 창업한 알렉산더 왕 CEO의 최근 인터뷰 내용을 공유했다.
머스크 CEO는 해당 글에 대해 "분명히(Obviously)"라는 댓글을 달아 이런 의혹에 동조한다는 취지의 뜻을 표했다. 앞서 딥시크는 모델을 공개하며 발간한 기술보고서에서 AI 모델을 훈련하는데 엔비디아의 H800 GPU 2048개로 이뤄진 클러스터를 활용했다고 밝혔다. H800은 대중 수출 통제를 위반하지 않는 수준으로 성능을 제약한 저가 GPU이며, H100보다 훨씬 저렴하다.
머스크는 "엔비디아 매출 중 약 20%는 싱가포르"라며 "엔비디아의 전체 GPU 판매량 중 20%가 전부 싱가포르로 가지는 않을 거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익명을 요청한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 역시 "과거에도 첨단 반도체 제품이 수출 규제를 피해 중국 화웨이 등으로 유입된 사례가 있었다"며 "중국·대만 내 반도체 유통채널이나 모듈 업체를 통한 수출 우회 경로를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고 사실상 동의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대중국 반도체 규제 수준을 범용까지 확장하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아직 정부 출범 초기인 만큼 논의가 매우 초기 단계라면서도 엔비디아의 H20 칩 제품으로 수출 통제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을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발(發) AI 쇼크가 시장 경쟁을 가속화 시키면서도, 동시에 미 정부가 수출 통제의 수위를 높일 경우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AI 반도체 시장 저변이 비(非)엔비디아로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업계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딥시크의 등장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가속기 개발을 더 촉진 시키고, 차세대 HBM 제품 수요를 더 키우는 요인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딥시크 등장을 계기로 중국 메모리 기업들의 자체 HBM 개발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며 "SK하이닉스 등이 기술 리더십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기존과 다른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재희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미 빅테크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AI 인프라 구축을 하는 것이 올바른지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HBM 수요 증가 속도는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기업들은 중국으로의 저사양 HBM 수출 규제가 기존보다 강화될 가능성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