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저가형 AI(인공지능) 딥시크(DeepSeek) 등장으로 미국 빅테크 기업의 AI 인프라 투자 초점이 '가성비'로 전환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선 AI 시장 저변이 넓어져 긍정적일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중국 기업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력 자립에 대비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2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딥시크 등장으로 미 빅테크 기업의 기존 '고비용 고효율' AI 개발 방식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딥시크 AI 모델이 적은 비용으로 미 오픈AI의 챗GPT와 비슷한 성능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서다.
기존 빅테크 기업은 엔비디아 고성능 칩을 통해 AI 개발 투자를 진행해온 바 있는데, 딥시크는 엔비디아 저성능 칩을 통해 챗GPT의 20분의 1수준으로 AI 모델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트렌드포스는 "딥시크 등장으로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 의존도는 줄고, AI 투자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클라우드 서비스 공급자(CSP)는 AI 투자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인프라 채택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미 빅테크 기업들도 딥시크에 잇따라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딥시크가) 진정한 혁신을 보여주고 있다"며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능은 향상되고 비용은 낮아지는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팀 쿡 애플 CEO도 같은 달 30일 "효율성을 높이는 혁신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딥시크 모델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렌드포스는 딥시크 등장으로 미국이 대중국 AI칩 수출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그러면서 트렌드포스는 "미 정부의 제재로 중국 기업의 AI칩·공급망 투자가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반도체 학계에선 딥시크가 AI 시장 성장·HBM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도,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기술 추격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부정적 요인도 공존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CXMT)는 최신 D램 DDR5를 시장에 내놓는 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기술력을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제한된 정보로 판단하긴 이르지만, 시장 내 단기적 기회 요인과 위험 요인이 공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업계 동향을 주시하며 급변하는 AI 시장에 적기 대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AI 반도체 시장 저변이 비(非)엔비디아로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분명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며 "다만 중국 메모리 기업들의 자체 HBM 개발 속도가 빨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기술 리더십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기존과 다른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박순원기자 ssun@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