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선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게 국회 권한 침해'란 취지로 청구된 권한쟁의·헌법소원 심판 선고를 급거 연기했다. 여권의 불공정 의혹 제기 여론전 영향뿐 아니라, 절차상 졸속 논란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헌재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권을 행사하지 않은 부작위(不作爲)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며 청구한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변론을 재개한다고 3일 오전 11시57분쯤 공지했다. 당초 이날 오후 2시 선고를 예정했으나, 2시간여 앞두고 변론 재개로 급선회했다. 변론기일은 오는 10일 오후 2시로 지정됐다. 김정환 변호사(법무법인 도담)가 "공정하게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낸 헌법소원도 선고 예정이었지만 기일 지정 없이 연기됐다. 재판관들은 이날 오전 평의를 거쳐 이처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대행은 앞서 지난해 12월31일 국회에서 선출된 재판관 후보자 3인 중 정계선·조한창 재판관을 임명하되 마 후보자에 대해선 여야 합의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임명을 보류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연이어 탄핵소추로 직무정지된 가운데 '대행의 대행' 권한이 쟁점화했다. 국회가 선출한 마 후보자가 임명됐다면 헌재는 '9명 완전체'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우 의장은 최 대행의 부작위로 헌법재판관 선출권이 침해됐다며 국회 명의로 권한쟁의를 청구했고, 김 변호사는 청구인 등이 헌법재판을 충실히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지난달 22일 첫 변론기일을 열고 이틀 뒤 선고일을 이달 3일로 정했다. 최 대행 측은 "마 후보자에 대한 여야 합의 내용 등을 확인해야 한다"며 추경호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증인 신청과 변론 재개도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그러다 지난달 31일 오후 1시쯤 헌재는 최 대행 측에 여야의 재판관 추천서 제출 경위를 서면으로 '당일 제출'해달라고 했다.
최 대행 측은 설 연휴가 겹쳤고 자료 제출 시일이 촉박하다며 변론재개를 재신청했는데, 헌재는 사흘 뒤에야 수용한 것이다. 국민의힘에선 최 대행을 향해 '헌재가 권한쟁의를 받아들이더라도 마 후보자 임명을 거부하라'는 요구를 해왔는데, 헌재 측은 이날 천재현 공보관 브리핑에서 "만약 인용됐는데 (집행력이 없다고) 결정 취지를 따르지 않으면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며 각을 세웠다.
헌재는 구체적인 변론 재개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사실관계에 대해 보다 명확히 정리해 결정에 대한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한 차원"일 것이라고 평했다. 당분간 '진보성향' 마 후보자 충원 없이 탄핵심판을 이어가게 된 윤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헌재가 사실관계 확인에 소홀한 채 권한쟁의·헌법소원 심판 변론을 서둘러 종결하려 했다며 불공정 의혹 제기를 이어갔다.
국민의힘에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날 당 비대위원회의에서 "심각한 절차적 오류가 있는 이번 (권한쟁의)심판은 각하가 마땅하다"고 가세했다. 그는 "마 후보자까지 헌법재판관이 되면 재판관 9명 중 4명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채워진다"며 "대통령 탄핵 인용이 어려워보이자 억지로 자기 편 한명 더 얹으려는 게 아니냐"고 했다. 헌재와 민주당을 '한편'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또 "국회 의결을 거치 않는 국회 명의 권한쟁의심판 청구 자체가 법과 판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우 의장이 국회를 참칭했다"며 권한쟁의 무효를 주장해왔다. 여권 성향의 임무영 변호사는 헌재의 변론 재개는 '직권조사 사항'을 간과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국회의 대리권 추인을 기다리는 등 "'청구인 적격'의 하자를 추완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헌법재판소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불임명 관련 권한쟁의·헌법소원 심판 선고를 연기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걸린 헌재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헌재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낸 권한쟁의심판의 변론을 재개해 오는 10일 오후 2시에 변론을 진행하고 김정환 변호사가 '공정하게 헌법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낸 헌법소원 심판 선고는 무기한 연기했다.<연합뉴스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