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운용 출신, 한투·미래 등으로 이동
자산운용사 인재 영입·육성 전략 주효
ETF 마케팅·책임자급 인력 아직 부족
장기투자수단으로 운용사간 이동 늘듯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자산운용업계의 인력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 최대 자산운용사 삼성자산운용 등에서 주로 인재 유출이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대형사와 중형사를 가리지 않고 인력 이동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기준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ETF 순자산총액은 180조8652억원이다. 작년 말 173조5639억원이었던 순자산 총액이 한 달새 약 7조원이 늘은 셈이다.
국내 ETF 시장은 2002년 10월 삼성자산운용의 'KODEX200'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TIGER200'을 상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초기에는 거래량이 적고 기관 중심으로 활용돼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았다.
이후 2011년부터 레버리지·인버스ETF가 도입됐고 이어 채권, 원자재, 배당주 등 다양한 ETF 상품군으로 확대됐다. 이에 2014년 ETF 순자산 규모가 20조원을 돌파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인 투자자가 급증하면서 2023년엔 순자산총액이 100조원을 넘어서게 됐다. 그로부터 약 2년 만에 순자산총액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국내 ETF 시장 성장의 배경엔 개인·기관 투자자의 관심 증가, 제도적 지원, 투자 옵션 확대 등이 자리한다. 개인 투자자들이 ETF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퇴직연금·연금저축 계좌에서도 ETF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장기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ETF를 자산배분 전략에 적극 활용하면서 수요가 증가했고 액티브 ETF 출시로 투자 전략도 다양해졌다.
이와 함께 업계에서는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적극적인 인재 영입과 육성 전략이 주효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02년 삼성투신운용 시절 한국 첫 ETF인 'KODEX200 ETF'를 출시하며 '한국 ETF의 아버지'로 불린 배재규 부사장이 2022년 한국투자신탁운용으로 자리를 옮긴 게 대표적이다. 그는 삼성자산운용 재직 당시 국내에 ETF를 처음 도입한 것은 물론, 아시아 최초로 레버리지·인버스 ETF를 출시하며 ETF 시장을 이끌어왔다.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의 ETF 부문을 이끌고 있는 김남기 ETF 운용부문 대표도 삼성자산운용 ETF운용1팀장 출신으로 2020년 자리를 옮겼다.
삼성자산운용에서 팀장급이었던 김찬영, 김정현, 김남의 또한 차례로 KB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타임폴리오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다만 김찬영 KB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은 현재 직을 내려놓은 상태다.
최근에는 한투운용의 ETF 마케팅 사업을 총괄해 온 김승현 ETF컨설팅담당이 하나자산운용 ETF사업부문총괄로 자리를 옮겨 이달부터 출근했다. 한투운용은 지난해 김찬영 ETF 디지털마케팅 본부장을 KB자산운용에게 빼앗긴 뒤 일년 만에 다시 ETF 사업 관련 수장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이로써 한투운용은 2년 연속 인력 이탈이 발생하고 있지만, 서둘러 충원하진 않을 전망이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외부에서 충원할 계획"이라며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채용을 서두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자산운용은 지난해 합작사였던 UBS와 결별하고 하나증권 자회사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김태우 전 다올자산운용 부회장이 하나자산운용의 대표로 취임했다. 여기에 김승현 총괄이 이달부터 합류하게 된 것이다. 하나자산운용의 ETF 순자산총액은 이날 기준 1조3668억원으로 국내 자산운용사 중 9위다. 2023년 말 당시 3902억원 수준이었으나 1년 만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김 총괄 합류로 급성장하고 있는 하나자산운용의 ETF 부문에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 것으로 보인다.
키움자산운용도 최근 이경준 미래에셋운용 전략 ETF운용 본부장을 신임 ETF운용 및 마케팅 총괄 상무로 영입키로 했다. 이 본부장은 삼성자산운용 출신으로 지난해 미래에셋운용의 히트작이었던 '커버드콜' 전략 ETF를 만든 주역이다. ETF 실무를 담당하던 다른 직원 일부도 이 본부장과 함께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본부장은 올해 3월쯤 키움운용으로 옮길 예정이다. 키움자산운용의 ETF 순자산총액은 3조9032억원으로, 이 본부장 영입을 통해 신한자산운용(6조924억원)과 2조5000억원 정도의 규모를 좁히는 게 목표다.
KB자산운용은 김찬영 본부장이 직을 내려놓으면서 ETF 수장에 공백이 생겼지만, 내부에서 충원했다. 노아름 운용실장을 본부장으로 승진 발령내면서 공석을 빠르게 채운 것이다. 노 본부장은 ETF 운용에 잔뼈가 굵은 인물로 2007년 삼성자산운용, 2021년 키움투자자산운용을 거치며 ETF운용을 주로 담당했다. KB자산운용에는 지난해 4월부터 합류하게 됐다.
NH아문디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단행해 ETF투자본부를 총괄하는 ETF투자부문을 신설했다. ETF투자부문장은 한수일 채권운용부문장이 겸임하며 ETF투자본부장은 김승철 패시브솔루션본부장이 ETF투자본부를 새롭게 이끌게 됐다.
김승철 본부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삼성증권 등을 거친 바 있는데, 해당 조직개편을 통해 NH아문디자산운용이 연금 상품, 해외투자 ETF 라인업 확대에 힘을 줄 것으로 보인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ETF사업부문장에 박명제 전 블랙록자산운용 한국법인 대표를 선임했다. 하지원 부사장 후임으로 ETF사업부문장을 맡게 된 박 전 대표는 ETF 분야에서 정통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박 전 대표는 1998년 KGI증권에 입사해 금융투자업계에 처음 발을 디뎠다. 이후 2004년 블랙록으로 자리를 옮겨 2014년 아이셰어즈(iShares) ETF 한국영업 총괄을 담당했고, 2017년부터 동북아 영업총괄을 맡았다. 지난해 블랙록자산운용 한국법인 대표에 올랐으나 취임 1년 만인 지난해 10월 사임하고 삼성자산운용으로 적을 옮겼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산운용사들 사이에서 ETF 시장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지만 ETF 관련 마케팅이나 책임자급 인력은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원래도 이동이 잦은 편이라 운용사간 이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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