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산업이 전기차 시장 둔화와 중국의 저가 공세, 통상 정책 불확실이라는 삼중고로 '죽음의 계곡'을 지나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적기에 자금 지원을 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4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배터리 산업은 지난 2023년 4월 세제 지원이 강화됐지만 현행 세액공제는 법인세에서 차감하는 방식이다. 적자를 기록한 기업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구조다.
배터리 산업은 특성 상 초기 설비 투자 비용이 막대하고 생산 수율 조정 등의 문제로 투자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도 적자가 지속되면 세액공제를 적용받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 SK온은 조세특례제한법상 연구개발비와 시설투자비 세액 공제액이 2021년 각각 52억원과 2000억원, 2022년 387억원과 6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익이 나지 않아 모두 이월돼 감면 혜택을 보지 못했다.
현행법상 공제액은 10년까지 이월이 가능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재 상황에서는 기업의 투자재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설사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과거 적자로 인한 결손금을 먼저 상쇄한 후 세액공제 적용이 가능해 실질적인 감면 효과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또 배터리 기업들은 '글로벌 최저한세' 규정으로 기대했던 감세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도 못한다. 글로벌 최저한세(15%)는 기업이 세금 감면을 많이 받아 세금을 거의 내지 않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세율을 부과하는 제도다.
만약 특정 국가에서 세율이 15% 미만이면 모기업이 있는 국가에서 부족분을 추가 과세해 최소 15%의 세율을 맞추도록 한다. 현재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적자인 데 글로벌 최저한세는 적자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어 세액공제에 따른 감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에서 세액공제를 보다 실효성 있게 적용할 방안으로 직접 환급제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다. 직접 환급제는 기업이 시설투자나 연구개발을 할 때 발생하는 세액공제 금액을 즉시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다.
직접 환급 세제가 도입되면 수익 여부 관계없이 투자 시점에 즉각적인 현금 지원이 이뤄진다. 기업들은 자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재무 구조의 개선 효과와 추가 투자를 촉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현재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투자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하지만 캐즘과 그간의 대규모 설비투자 집행 등으로 자금 조달 여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대부분이 회사채 발행이나 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북미에서만 5개의 신규 공장을 건설 중에 있어 8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박지웅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배터리 산업이 국가 첨단전략산업임에도 불구하고,미국과 유럽연합(EU)이 보조금을 포함한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글로벌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보조금과 저비용 생산체계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CATL은 점유율 26.1%로 1위를 지켰다. 중국 내수가 중심인 BYD도 6위까지 올라섰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는 각각 2위, 3위, 5위다.
김승태 배터리산업협회 실장은 "중국은 최근 배터리 뿐 아니라 소재, 부품, 장비까지 저가 경쟁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어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특히 중국 배터리 제조장비의 평균 가격은 한국의 약 80% 수준으로 장비시장도 중국 기업이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 현금 환급과 제3자 세액공제 양도제는 유일한 대안이자 업계의 간절한 소원"이라고 덧붙였다.박한나기자 park27@dt.co.kr
지난달 9일 브라질 바이아주 카마사리시에 위치한 산업단지 내 BYD의 전기차 공장 건설 현장 모습.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