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양자컴 하나로 연결하고 멀티코어 양자프로세서 도전"

입력: 2025-02-06 15:48 이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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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원자시계 관련 연구자료 전무
日 선행논문 들여와 연구 시작
난관 속 온도안정장치 개발 성과
해외기관과 'KRISS-1' 공동개발
2·3세대 연구자 양성 기반 마련
국가차원 컴퓨팅 SW 투자 관건
양자 생태계 구축거점 성장 목표
측정기술 개발·표준 경쟁력 확보
멀티코어 등 패키징 개발 도전
내달 초전도 기반 '클라우드' 시연
美·日과 우주·차세대 통신 협력도
KAIST 공동운영 양자대학원 확대

[이준기의 D사이언스] "양자컴 하나로 연결하고 멀티코어 양자프로세서 도전"

이호성 표준연 원장. 황응준 프리랜서 제공

이준기의 D사이언스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지난 30년 간 지속해 온 양자분야 연구개발을 통해 양자산업과 양자정책, 양자 국제협력을 모두 아우르는 '양자과학기술 전문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표준연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양자과학기술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측정표준과 측정기술을 선도해 온 표준연이 다가오는 양자전환(QX) 시대를 맞아 국가적 책무를 갖고 양자과학기술 전문 연구기관으로서 역할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준연은 2017년부터 양자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양자 분야 기초·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에 집중해 왔다. 이런 노력으로 양자컴퓨팅, 양자센싱, 양자 소재·소자 등 양자과학기술 전반에 걸쳐 수월성 높은 R&D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이 원장은 "취임 이후 기존 양자기술연구소를 확대 개편해 인력과 예산을 대폭 확충했다"며 "지난해는 R&D뿐 아니라 정책, 전략, 국제협력 등을 주도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양자 국가대표 기관으로 비상하기 위한 기반을 놓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표준연은 지난해 정부가 지정하는 양자국가기술전략센터, 국가양자기술정책센터, K-퀀텀 국제협력본부 유치를 계기로 양자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연구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1975년 대덕연구단지 1호 입주 연구기관인 표준연은 올해 설립 5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았다.

이 원장은 "지난 반 세기 동안 측정표준 확립과 측정과학기술 개발·확산을 위해 많은 선배 연구자들이 열정을 다해 노력한 덕분에 세계 5위권의 측정표준 역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50년은 측정표준 분야에서 세상의 기준을 만드는 연구기관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글로벌 측정표준 대표기관으로 도약하겠다"고 피력했다.

이호성 표준연 원장. 황응준 프리랜서 제공

대담=이준기 과학바이오팀 부장

◇국가 표준시 '원자시계' 맨 땅서 일궈…레이저 기술로 돌파구 찾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 표준연에 들어온 이 원장은 표준시를 정의하는 '원자시계' 연구로 본격적인 시간 측정분야 연구자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국내에서 원자시계 관련 연구가 전무했기에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연구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표준연에서 원자시계 개발을 위해 지도교수님께 학생을 보내 달라고 해서 표준연에 들어오게 됐다"며 "표준연에 들어와 보니 원자사계 연구자가 거의 없고, 관련 연구자료도 전혀 없어 임시방편으로 일본 논문과 자료를 들여와 기초부터 공부해 가며 연구를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당시 일본은 우리보다 30년 앞서 원자시계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 원장은 일본을 따라하는 연구방식으로는 그들을 앞설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학원 시절 연구했던 레이저를 원자시계에 적용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늦은 밤까지 연구실 불을 밝히며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레이저 기반의 원자시계 연구는 미국, 프랑스의 국립표준연구기관들이 일부 하고 있었지만 시작 단계였기에 우리가 열심히 한다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연구환경에 '난관' 부딪혀…포기 않고, 새 아이디어로 '승부'

하지만, 연구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레이저를 활용한 원자시계 연구가 지금껏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아 적어도 3년 이상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지원이 필요했다. 당시 연구원 내부에서 3년 넘게 연구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그런 전례도 없었다.

주변에선 "다른 나라에서 다 한 연구인데, 그걸 왜 해야 하는지"라며 못마땅해 했다. 그럴 때마다 이 원장은 논문과 설명자료를 갖고 기관장을 직접 찾아가 원자시계 연구의 필요성을 설득해 간신히 연구를 이어갔다.

이번에는 열악한 연구환경이 또다른 장애물로 다가왔다. 고도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원자시계가 계속 작동하면서 정밀한 실험을 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첨단장비와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는 "원자시계 연구를 하려면 항온·항습을 유지하면서 주변 전자기파와 자기장 등을 차폐해야 했지만, 당시에는 그런 환경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시작도 하기 전에 원자시계 연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미국 국립표준연구소에 1년 간 방문연구원으로 떠나 그들의 연구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고, 열악한 연구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한 끝에 항온장치 없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온도안정장치를 손수 개발했다.

마침 해외 연구기관들이 이 원장이 개발한 온도안정장치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이들과 협력할 수 있는 물꼬를 터 우리만의 표준시인 '세슘원자시계(KRISS-1)'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세슘원자시계는 300만년에 1초 오차를 갖는 높은 정확도로 2009년 세계도량형국(BIPM)에 정식 등록돼 국제 표준시를 정의하는 '협정세계시(UTC)' 생성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개발한 온도안정장치가 있었기에 해외 기관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됐다"며 "무엇보다 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학연 협동과정을 통해 차세대 원자시계를 연구할 2세대 연구자들을 양성할 수 있었던 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2세대 연구자들을 이어 3세대 연구자들이 세슘원자시계보다 수 만 배 정확한 '이터븀 광시계' 개발에 성공했으며, 칩 스케일 원자시계와 휴대형 양자중력계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호성 표준연 원장 . 황응준 프리랜서 제공

◇"양자기술, 표준연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내달 '양자컴' 클라우드 시연

이 원장은 임기 내 표준연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자과학기술 전문 연구기관'으로 성장시키고,' K-양자산업 생태계 구축 거점'으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양자과학기술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양자국가기술전략센터'와 '국가양자기술정책센터'를 중심으로 양자과학기술 국제협력을 총괄하는 'K-퀀텀 국제협력본부', 양자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육성하는 '양자전환 스케일업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대한민국 양자과학기술을 선도하고, 양자전환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미래 산업의 판도를 뒤바꿀 양자기술의 경우, 반 세기 동안 정밀한 측정기술 개발과 측정표준 확립에 기여해 온 표준연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표준연은 다음달 중에 3년 간 개발해 온 초전도 기반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클라우드로 서비스하는 시연을 준비하고 있다.

표준연이 짧은 기간 내 양자컴 시연에 나설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원자시계, 양자센싱 등과 같은 고도의 정밀 측정기술을 축적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여기에 물리학 전공 연구자를 베이스로 전기전자, 기계공학 등 서로 다른 전공 분야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융합연구를 통해 협업할 수 있 최적의 연구환경을 잘 갖췄기 때문이다.

표준연은 2026년까지 50큐비트 초전도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뒤, 2030년까지 1000큐비트로 늘려 나갈 계획이다. 중성원자 기반의 양자컴퓨터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는 양자센싱과 양자통신 분야에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앞서 있어 양자 소부장 산업과 양자컴퓨팅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에 국가 차원에서 집중 투자한다면 세계적인 양자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호성 표준연 원장. 황응준 프리랜서 제공

◇말 많은 양자컴 상용화 시점은…"PC 발전 역사 볼 때 20년 걸릴 듯"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CES 2025에서 논쟁을 불러온 '양자컴 상용화 시기'에 대해 이 원장은 "1940년대 진공관 컴퓨터 '애니악'이 처음 등장한 이후 트랜지스터 컴퓨터를 거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PC로 보편화된 지 대략 40년이 걸렸다"면서 "구글, IBM이 양자컴을 상용화한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양자컴을 본격적으로 쓰기까지 적어도 20년은 걸리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현재의 양자컴 기술 수준에 대해 "진공관 컴퓨터가 트랜지스터 컴퓨터로 바뀌는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며 "엔비디아의 GPU가 1999년 처음 팔리기 시작해 20년이 지난 지금 폭발적으로 팔리는 것처럼 양자컴이 팔리는 시점은 앞으로 20년 가량 지난 후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글로벌 톱 전략연구단 사업을 통해 양자분야의 도전적 연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현재 표준연을 주관기관으로 KIST, ETRI, KISTI 등 4개 출연연을 중심으로 대학, 기업과 협력할 예정이다.

그는 "양자컴퓨터 성능을 높이려면 큐비트 수를 확장해야 하고, 큐비트 하나 하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기술적으로 구현하고, 초전도와 중성원자, 이온트랩, 광자 등 다양한 방식의 양자컴을 연결해 마치 하나의 양자컴처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앞으로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CPU를 하나로 묶어 성능을 높이는 멀티코어 프로세서처럼, 양자컴도 뇌에 해당하는 핵심부품인 'QPU(양자프로세서)'를 멀티코어로 연결해 쓸 수 있는 고난이도 양자 패키징 기술도 확보하겠다는 게 이 원장의 구상이다.

그는 "우리는 작동방식이 서로 다른 초전도, 이온트랩, 중성원자, 광자 양자컴을 양자 네트워크로 연결해 하나의 양자컴처럼 쓰면서 양자프로세서를 멀티코어로 만들어 보다 효율적인 컴퓨팅 성능을 높이는 이른바 '슈퍼 양자컴 플랫폼 기술'을 구현하는 그야말로 미래 양자기술을 확보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호성 표준연 원장. 황응준 프리랜서 제공

◇양자 인재 키우고, 50주년 계기 '국제 리더십' 강화

이 원장은 미국, 일본 등 양자 선도국과 협력해 양자분야 경쟁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올해가 설립 50주년인 만큼 다양한 국제협력을 통해 측정표준와 양자, 우주, 차세대 통신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한층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와 초전도 양자컴퓨팅 연구협력을 확대하고,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AIST 산하로 신설된 양자·AI 연구조직인 G-QuAT와 양자센서, 양자컴퓨터 테스트 베드 구축을 포함한 양자기술 전반에 대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50주년을 기념해 '아태 측정협력기구(APMP)' 의장국으로 인천 송도에서 미터협약 150주년 기념 'APMP'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양자인력 양성 확대에 힘을 모으고 있다. 과기정통부 지원을 받아 KAIST와 공동 운영하는 '양자대학원'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원장은 "매년 10명의 신입생을 선발해 표준연과 KAIST에서 강의와 연구를 번갈아 하며, 양측 교수와 연구원들이 학생 지도에 참여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반응과 만족도가 높아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어 선발 인원과 예산도 늘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출연연이 보다 자율과 책임을 갖고, 국가적 임무와 미션에 부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기준이 되는 기관으로서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하는 세계 최고의 측정표준 연구기관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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