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지난해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일제히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올해 역시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들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한층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9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은 지난해 136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2년 연속 연간 적자를 이어갔다. 롯데케미칼 역시 지난해 894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2년부터 3년간 누적된 적자만 2조51억원에 달한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도 121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 부문의 선전에 힘입어 적자는 피했지만, 합성수지 사업의 실적 악화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4% 감소한 2728억원에 그쳤다.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실적 악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대부터 신증설을 시작한 중국의 석유화학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공급 과잉은 2~3년 전부터 이어졌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까지 겹치면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의 신·증설을 지속하면서 올해도 공급과잉 현상이 가중될 전망이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 2565만톤에서 2023년 5174만톤으로 이미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신규 가동 물량까지 더해져 추가로 900만톤이 시장에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 둔화에 제품 가격을 올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석화업계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값)는 지난 6일 기준 톤당 213달러로 손익분기점인 300달러를 밑돌고 있다. 원재료 가격 상승분도 제품가에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것이다.
기업들은 일제히 올해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LG화학은 지난해 초만 해도 4조원대 수준의 설비투자(CAPEX)를 계획했지만, 올해는 2~3조원대로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도 올해 투자 금액을 기존 계획 대비 4000억원 축소한 1조4000억원으로 정했다.
범용사업 비중을 줄이기 위한 자산 매각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노후화된 석유화학 공정과 범용 생산 라인 일부를 정리하고 편광판 소재 사업을 매각했는데, 올해 역시 포트폴리오 재편을 지속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무산됐던 파키스탄 법인 매각과 관련해 최근 잠재적 매수인과의 협상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민우 롯데케미칼 전략기획본부장은 지난 7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파키스탄 법인은 조만간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