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니즘' 내세우며 중도 겨냥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제안도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제안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사실상 조기대선 전략을 꺼내들었다. 최근 '성장론'을 기치로 선점해 온 보수 아젠다를 비롯해 기본사회 공약도 부활시켰다. '먹사니즘'을 뛰어넘은 '잘사니즘'이다. 조기대선 국면에서 실용주의로 중도층 공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만 여권에선 그 동안 이 대표의 말과 행동이 달랐다고 비판하며, 신뢰할 수 없다고 공세했다.
◇연설 직접하며 '성장' 28번, '경제' 15번 언급=통상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원내대표가 해왔다. 다만 이 대표는 이날 직접 연설자로 나섰다. 국민에게 자신의 정책 기조와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이날 민생 회복에 필요한 '기본사회'와 '성장'의 가치를 모두 들고나왔다. 두 번째 당 대표 임기를 시작하면서 내놓은 '먹사니즘' 대신 '잘사니즘'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도 제시했다. 사회·경제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성장만 강조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를 위해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 위원회'를 설치해 회복과 성장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연설에서는 '성장'이 28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됐고, '경제'는 15차례 나왔다.
◇좌우 넘나드는 행보 예고=주요 정책에서는 좌우를 넘나드는 행보를 예고했다. 중도층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셈이다. 논란이 거센 반도체 분야의 '주 52시간 근로 예외 적용'과 관련해선 "노동 시간 연장이 노동대가 회피 수단이 되면 안 된다"고 못박았다. 예외 적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노동계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주 4일제 역시 청년층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A부터 F까지 알파벳 철자를 머리글자로 한 성장전략도 제시했다. 인공지능(AI)·바이오(Bio)·문화 콘텐츠(Contents & Culture)·방위산업(Defense)·에너지(Energy)·제조업 부활(Factory)이다.
AI의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을 언급하며 "AI 혁명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분야에 있어서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 등 기존에 밝힌 정책공약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준비된 지도자라는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의지로 해석된다.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로 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한 셈이다.
◇한미 동맹 강조…탄핵반대 세력엔 선 그어=이 대표는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이며, 첨단기술 협력과 경제 발전을 위한 주요자산"이라며 "자유 민주진영의 도움으로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성장발전해 온 우리는 앞으로도 자유 민주진영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진보 진영에서 고수해 온 진중 노선 대신 친미로의 변화를 시도한 셈이다. 이 대표는 최근 한·미·일 협락과 대일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 대표는 통합을 기치로 한 민주 공화국 건설도 화두에 올렸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선을 긋는 논리를 폈다. 이 대표는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까지 헌법기관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과 폭력이 난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 원리를 부정하는 '반헌법, 헌정 파괴 세력'이 현실의 전면에 등장했다"고 비난했다. 비상계엄 이후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헌법기관을 불신한 세력의 행태를 '반민주적'으로 규정해 동행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어 "민주공화정의 가치를 존중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헌정수호연대'를 구성하고 헌정 파괴 세력에 맞서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與 "이 대표가 개혁과 변화의 대상"=이날 이 대표의 연설을 듣던 여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항의에 나섰다. 양측은 '즉석 공방'을 벌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 대표가 '주 52시간 근로 예외 적용'을 거론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주 52시간제에 대한) 진심은 뭔가"라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은 최근 이 대표가 반도체 52시간제 예외문제에 대해 기업 측 요구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냈다가, 다시 반도체특별법에서 이 문제는 다루지 않는 쪽으로 무게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 대표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제안했을 때 여당 의원들은 야유를, 야당 의원들은 박수를 쏟아냈다.
장외에서도 설전은 계속됐다. 이양수 사무총장은 연설이 끝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과 4범이자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 대표가 국민소환제 도입을 하겠다고 하니 국민소환제 대상 1호는 이 대표가 될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과거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했다가 3개윌 뒤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한 점을 거론하며 "3개월 뒤에는 본인에 대한 국회의원 국민소환을 부결시켜달라고 호소할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나경원·조배숙·신성범·김희정·권영진·강승규·이성권 등 원외에 있다가 22대 국회에 복귀한 이른바 '돌아온 초선모임' 소속 의원들은 회견을 열어 "이 대표의 습관성 거짓말을 믿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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