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상장사 밸류업 프로그램 취지 설명
더많은 기업 참여위해 유인책 마련
IPO 시장 신뢰성 회복 방안도 강조
상장폐지 절차 효율화해 나갈 계획
"지난해 선진국들의 주가는 대부분 다 올랐고, 상당히 좋은 시황을 보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오히려 반대로 갔습니다. 주가는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을 반영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의 현금 흐름을 기초로 주가를 평가해 봐도 20~30%정도 디스카운트 돼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밸류업은 이 디스카운트된 부분을 최소한 100%까지는 가져가 보자는 노력입니다."
정은보(63·사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11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한국거래소가 추진하고 있는 상장사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주가는 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현재의 현금흐름조차 반영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상장사의 주가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거래소가 앞장서겠다는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기획재정부(옛 재무부)와 금융위원회 등 경제 관련 부처에서 근무한 경제관료다. 이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까지 역임한 경제 전문가다.
지난해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부임한 정 이사장에게 곧바로 막중한 임무가 부여됐다. 고질적인 국내증시 저평가(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밸류업 정책'이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정책적인 지원을 맡았다면, 상장기업의 상장과 폐지, 공시 등 실무를 담당하는 거래소가 밸류업 정책을 일선에서 추진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정 이사장은 "디스카운트된 부분은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통해서 올려야 하는 것이 맞지만 거래소는 우선 디스카운트돼 있는 부분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지금까지 상당히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평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개별 소액 주주들에 대한 보호가 미흡한 부분 때문"이라며 "지난해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이후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고 배당 성향도 상당 부분 상향 조정됐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출시한 밸류업 지수에 편입된 기업들에 대한 평가 계획도 내놨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오는 6월 지수 리밸런싱을 앞두고 있다.
정 이사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에 대해 정량적인 기준과 정성적인 기준을 함께 고려해 편입과 편출 기업을 선정하고, 지난해 발표 이후 비판을 받았던 과정을 거울 삼아 가능한 시장에서 수용 가능한 지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많은 기업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인책 마련에도 힘쓰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는 "정부가 제안한 세제 지원과 관련된 내용들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투자자들이나 사회적인 평가까지 반영한 우수기업을 선정해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밸류업 프로그램과 함께 우리나라 증시의 또 다른 문제점인 '신뢰성' 회복을 위한 방안도 강조했다. 기업공개(IPO) 시장에 대한 불신, 다수의 한계기업으로 인한 증시 전반의 악영향 등 투자자들이 답답해 하던 부분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정 이사장은 "코스닥 시장이 1996년에 문을 열었을 때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는 것만으로도 (기업들이) 굉장한 프라이드를 가졌지만 지금은 코스닥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며 "거래소는 코스피와 코스닥, 코넥스 시장에 대해 전체적으로 구조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상장과 폐지 문제를 짚었다. 그는 "부실·한계기업을 퇴출하기 위해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고, 상장폐지 절차를 효율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IPO 시장 역시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 확약 확대와 수요예측 참여자격 및 방법 합리화, 주관사 책임 강화를 통해 건전성을 제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상장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IPO 제도와 상장폐지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취지"라며 "기준 금액을 조금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IPO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어 "오히려 상장 기준을 충족하면 빠르게 상장을 결정하고, 반대의 경우에도 상장 불가를 빠르게 판단해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오히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불합리한 요구에 따라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투자자들이 비판하는 '중복상장'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비교하는 미국 시장과 우리나라 시장은 기업에 대한 상장 체계가 다르고, 상장과 관련된 문화도 차이가 있다"며 "어느 거래소도 개별 기업이 전략적 성장이 필요해 물적 분할을 실시하고 요건에 맞춰 재상장하는 것을 막는 곳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저희(거래소)는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 이러한 기업의 결정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보완도 계속해 나가고 있다"며 "다만 개별 기업의 전략적 투자 의사결정은 어느정도 존중이 돼야 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막기 보다는 투자자 보호 상충 문제만 살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거래소의 미래 성장에 대해서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다음 달 대체거래소(ATS) 출범 이후 수익성이 감소할 수 있지만, 지수시장 개방과 자체 지수 경쟁력 강화를 통해 더 큰 성장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ATS가 설립돼 위탁 매매 중개와 관련된 시장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면 거래소의 수익 모델의 일부 축소는 불가피할 것"이라면서도 "이에 대한 보완 대책으로 미래 사업본부도 만들고, 중개 수수료 위주의 수익 모델을 다양하게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수사용권 개방과 한국물 지수 파생상품의 해외 상장 허용 등은 초기 단계에서는 국내 수요가 해외로 일부 이전되는 부분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기관 투자자의 국내 야간 시장에 대한 신규 수요도 상당부분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부작용 보다는 결국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가상자산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새로운 상품에도 적극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 이사장은 "주요 자본시장에서 이미 거래가 되고 있는 만큼 정책 당국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우리도 너무 늦지 않은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시행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5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동욱기자 fu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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