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경제원로 간담회…정세균·이헌재·윤증현·유일호 참석
"민·관·정 3각협력 구축해 돌파… 트럼프 2기 협상력 더 높여야"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 사령탑을 역임한 경제 원로들이 미국 트럼프 2기 출범과 탄핵 정국에 따른 리더십 리스크 등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트럼프 2기의 관세전쟁이 그리 길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전방위 공세의 틈바구니에서도 조선과 같은 전략적 협력관계를 더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경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불안 요인을 조속히 해소하고, '민·관·정' 3각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2일 서울 세종대로 상의회관에서 전직 경제관료를 초청해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 경제원로에게 묻다'를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이들은 최 회장이 한국경제에 무역전쟁,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 정치적 불확실성이란 4대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는데에 모두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먼저 당면한 트럼프 2기에 대한 대응책을 조언했다.
정 전 총리는 "트럼프 2기의 보호무역 체제는 수출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에 분명한 악재지만, 그렇다고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다"며 "대한민국을 미국 등 세계 각국이 꼭 필요로 하는 나라로 만들어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도 "미중 관계가 정립될 때까지 면밀하게 관찰하며 협상에 유리한 전략을 모색해야 하고, 이 기회에 반도체, 자동차, 조선, 전자 등 분야에서 기업 차원의 동맹관계에 가까운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트럼프 2기에 대해 "어쩔 수 없는 포퓰리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지속가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길면 1년, 더 길어봤자 아마 다음 중간선거까지 끌고 갈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전 부총리는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 협상력의 우위를 갖고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절실하게 필요한 조선 능력을 상당히 상실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세계 제2위의 조선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여러 면에서 미국이 필요한 위치에서 우리가 협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대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불안요소를 빠른 시간 내에 해소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윤 전 장관은 "한국 경제는 전대미문의 내우외환으로 총체적 복합 위기에 처해 있다. 계엄 사태로 정치 경제 사령탑이 붕괴하고 나라의 리더십이 공백인 상태"라며 "경제는 절대 정치와 떨어져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단체도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는 진공 속에서 자라가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라며 "경제는 정치하고는 동반 관계에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행정부가 지금 거의 마비 상태이면 어떤 경제 정책이 효과를 보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전 부총리도 또한 "정치적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첫째도, 둘째도 안정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과 투자자, 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안정을 뒷받침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 전 부총리는 "미국의 '잭슨 홀 미팅'과 비슷하게 우리도 금융계가 산업계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는 '금융 서밋'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경제원로들은 또 한국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한상의를 중심으로 민·관·정이 협력해야 한다고도 입을 모았다. 이 전 부총리는 "정부가 컨트롤하기에는 경제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져 민간 주도의 신성장 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기업의 기술 문제와 저출생 고령화 문제 등 저성장 구조 해결을 위한 논의를 위해 상의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총리도 "대한민국의 강한 경쟁력은 기술, 인재, 창의적 콘텐츠, 그리고 배후의 제조업에서 창출되며, 민·관·정의 협력으로 완성된다"며 "민간은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 상용화에 앞장서고 정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정치권은 산업 정책 지원과 민생 안정을 위한 법·제도 기반 확충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반도체 52시간제 예외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반도체는 국가 대항전"이라며 "국회가 정신 차리고 산업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경제단체는 현장의 문제를 국회에 호소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간담회를 주최한 최 회장은 "이럴 때일수록 경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의사결정이 모여서 길을 잘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열심히 듣고 공부해서 기업이 실천해야 할 부분을 과감하게 시작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부분을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고 협력해 긍정적인 힘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상현기자 ishsy@dt.co.kr
최태원(왼쪽부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정세균 전 국무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경제원로 초청 간담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박동욱기자 fu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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