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물가 쇼크'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관세 부과가 수입 제품 가격 상승을 유발해 미국 내 물가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S(스태그플레이션) 공포'까지 거론되는 상황에 한국은행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미국 노동부는 12일(현지시간) 미국의 1월 CPI가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9%)를 상회한 수준이다. 전월 대비도 0.5% 올라 전망치(0.3%)를 웃돌았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3%, 전월 대비 0.4% 각각 상승했다.
근원 CPI 상승률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지을 때 눈여겨보는 지표 중 하나다. 대표지수와 근원지수의 전년 동월 대비, 전월 대비 상승률은 모두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를 웃돌았다.
1월 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 여파로 계란 가격이 전월 대비 15.2% 오르면서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53% 급등했다.
미시간대가 7일 발표한 2월 소비자심리 설문조사에서 1년 뒤 기대 인플레이션이 4.3%로 전월보다 1.0%포인트(p) 올랐다. CBS의 최근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66%가 트럼프 대통령이 물가를 낮추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관세 전쟁이 확산되면 전 세계 인플레이션이 재점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재발을 우려하는 응답자는 지난달 27%로 나타났다.
두 달 전 9%에서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타격을 줄수 있다. 얼어붙은 내수와 수출 둔화 '이중고'에 물가까지 다시 오르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은 최근 "CPI에 대한 위험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대중은 장기간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완만히 하회하는 것보다 단기간이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높은 데 대해 더 분개하는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역 분야를 비롯한 정책 불확실성이 중앙은행들의 정책 결정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관세는 물가를 상승시킬뿐만 아니라 성장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BIS는 최근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한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이 미국의 금리 인하를 더디게 만들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가 더뎌지면,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해야하는 한은 입장에선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지 않아 걸림돌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6일 외신 인터뷰를 통해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 대해 "외환시장 상황이 금통위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금통위원들은)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면 기름을 붓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달 금리 인하가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