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美·유럽, 공격적 투자 하는데
한국은 적자땐 세제혜택 못받아
기재부 "환급 재정부담 커" 난색
전문가 "정부, 책임 동반 선택을"
장기적 정책구조·투자 개편 강조
한국은 적자땐 세제혜택 못받아
기재부 "환급 재정부담 커" 난색
전문가 "정부, 책임 동반 선택을"
장기적 정책구조·투자 개편 강조
![[질문에 답하다] 세계가 `황금오리`에 자금 먹이 주는데… 한국만 뒷짐](http://contents.dt.co.kr/images/202502/2025021402101932049001[1].jpg "[질문에 답하다] 세계가 `황금오리`에 자금 먹이 주는데… 한국만 뒷짐")
배터리 설비투자·R&D
"중국과 미국, 유럽까지 자국 배터리 기업에 현금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중국과 미국, 유럽 등 각국은 배터리 산업을 국가전략기술로 육성하기 위해 한 가지 공통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자국 배터리 기업이 설비 투자나 연구개발(R&D)을 하면 세금 감면을 넘어 '현금'으로 직접 환급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조세특례제한법 제24조에 따른 통합투자세액공제는 기존의 10개의 시설투자 세액공제를 통합해 토지와 건축물 등을 제외한 모든 사업용 유형자산을 대상으로만 법인세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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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제 지원 한계…적자 기업은 혜택 못 받아= 문제는 현행법의 법인세 세액공제가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적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적자 기업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 이익이 발생할 때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기존 세액 공제 방식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배터리, 인공지능 등 국가전략기술산업은 초기 단계에서 설비 투자와 R&D에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공장 건설 후에도 생산 수율 조정 등의 문제로 인해 일정 기간이 지나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기업들은 초기 몇 년 동안의 적자를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적자에도 설비 투자와 R&D 투자를 지속해야 하지만 이를 충당할 매출보다 지출이 많아 유동성 문제를 겪는 수순이다. 현행 세제 지원 정책이 이러한 산업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숙원인 환급형 세액 공제는 세금 감면 혜택을 나중에 받는 게 아니라 즉시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현행 제도가 최대 10년간 이월공제를 허용해 향후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들은 당장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설비 투자를 했음에도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 기업은 SK온을 비롯해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 한 두 곳이 아니다. 이들은 유동성을 확보하게 도와주면 필수 투자에 신속하게 재투자해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승태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실장은 "배터리는 국가첨단전략산업이자 수출, 생산, 고용 등의 파급 효과가 상당히 큰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인 만큼 설비 투자에 대한 지원이 적시에 이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앞으로 몇 년 동안의 설비 투자가 향후 배터리 시장의 판도를 결정하는데 이 시기를 실기할 경우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현금 지원' 경쟁 본격화=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배터리 산업에 30%의 투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LFP(리튬인산철)에서 나아가 차세대 배터리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별로 R&D를 지원하고 있다. 무상에 가까운 토지 제공과 낮은 인건비, 내수 시장 효과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현금 환급을 받을 수 있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45X)를 운영 중이다. 45X는 2023년부터 배터리 부품과 핵심광물을 미국 내에서 제조하고 판매하는 사업자에게 세액공제를 전액 현금으로 지급해주는 제도다.
미국은 활용하지 못하는 세액공제를 제 3자에게 현금과 교환해 판매하는 양도제도도 운영 중이다. 한 예로 덴마크 오스테드는 미국 내 해상풍력 사업을 위한 세액공제를 J.P 모건 등 투자자들에게 양도해 프로젝트 자금을 확보했다.
프랑스도 녹색산업투자 세액공제의 일환으로 올해 12월 31일까지 승인된 에너지 분야의 배터리 등의 투자 계획을 대상으로 기업당 최대 3억5000만 유로까지 법인세와 상계하고 남은 초과액을 즉시 현금 환급하고 있다. 영국과 싱가포르도 법인세 등 차감할 수 있는 세금을 모두 상계한 이후 잔액에 대해서 현금으로 환급하고 있다.
박지웅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국가 전략 산업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보조금 지급을 결합한 재정 지원을 하는 것에 비해 한국은 지금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글로벌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기술력과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현재 전기차 캐즘과 중국의 저가 공세, 통상정책의 불확실성에 더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 부족까지 사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에 '한국판 IRA'인 직접환급제가 마련되면 국내 투자가 활성화되는 효과와 더불어 중장기적인 세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재정 운영 부담…보조금과 유사"= 넘어야 할 난관은 일시적 세수 감소다. 환급형 세액공제제도는 투자한 연도에 공제를 다 받지 못하면 나중에 이월해서 받을 수 있는 기존 방식과 달리 미리 그 금액을 지급해 주는 제도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해당 연도에는 당장 지급해야 하는 환급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환급 가능한 세액공제가 본질적으로 '세금 감면'이 아니라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지출'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낸색을 표하고 있다. 기존 세액공제는 기업의 세부담을 줄여 유보이익을 늘리고 이를 통해 재투자와 고용 창출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인 반면 환급형 세액공제는 정부가 직접 기업에 돈을 지급하는 보조금 성격이 강해 기존 세액공제의 취지와 다르다는 것이다.
OECD는 이런 이유로 환급 가능한 세액공제를 이전 지출로 분류한다. 이는 세금 감면이 아니라 정부가 기업에 직접 돈을 지급하는 형태여서 결국 예산 부담을 초래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김문건 기획재정부 조세특례제도과 과장은 "예산 편성의 측면에서 정부의 재정 운영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재정은 한정돼 있고 총수입과 총지출을 고려해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데 환급형 세액공제가 도입되면 정부 세출 우선순위와 무관하게 먼저 재정이 빠져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산업만 환급형 세액공제를 허용하면 다른 산업에서도 동일한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허들이다. 현재 반도체 산업에서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바이오 산업 또한 적극적으로 환급 제도를 원하고 있다.
김 과장은 "K-배터리의 퀀텀 점프를 적극적으로 응원한다"면서도 "결국 모든 세액공제 관련 제도에서 환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부의 재정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질문에 답하다] 세계가 `황금오리`에 자금 먹이 주는데… 한국만 뒷짐](http://contents.dt.co.kr/images/202502/2025021402101932049001[3].jpg "[질문에 답하다] 세계가 `황금오리`에 자금 먹이 주는데… 한국만 뒷짐")
◇배터리 장기적 세수 확대 기여…"지금이 골든타임"= 현재 배터리 기업들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과 차입 등을 통해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상황이다. CATL과 BYD의 경우 지난해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3위로, SK온과 삼성SDI는 5위와 7위로 밀려났다.
이상수 LG에너지솔루션 상무는 "정부가 세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배터리 산업은 국가 전략 기술로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원이 필요하다"며 "현재 한국의 배터리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래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야인 만큼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호소했다.
이어 "지금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 황금오리는 날아오르지도 못한 채 사라질 위험이 있다"며 "단기적인 재정 부담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황금알을 기대하며 지금 배터리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와 세수 확대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로는 이 문제는 정권 차원의 정책적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환급형 세액공제 도입은 단순한 세제 개편을 넘어 국가 재정 운영과 산업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사실은 정치적인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며 "미국 바이든 정부가 그랬고 유럽연합과 중국 정부가 그 길을 갔듯이 책임을 동반한 국가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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