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여담] 顚撲不破 <전박불파>](http://contents.dt.co.kr/images/202502/2025021402102369058002[1].jpg "[古典여담] 顚撲不破 <전박불파>")
주자의 보망장 사건도 이런 중국의 지적 전통과 연관된다. "성인이 지은 것을 경이라 하고, 현인이 풀이한 것을 전이라 한다"(聖人制作曰經, 賢人著述曰傳)는 말처럼 중국 최고의 사상서는 경(經)이다. 이 경을 풀이한 게 전(傳)이고, 전에 다시 주석을 단 게 주(注)와 소(疏)다. 그래서 "전으로 경을 풀이하지 전이 경을 어겨서는 안된다"(以傳解經, 傳不違經·이전해경 전불위경), "전은 경을 깨뜨릴 수가 없고, 소는 주를 깨뜨릴 수가 없다"(傳不破經, 疏不破注·전불파경 소불파주)라는 '경불가침해(經不可侵害)의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져왔다. 경을 의심하거나(疑經·의경) 함부로 고치는 건(改經·개경) 금기였다. 경과 전의 뜻을 밝히는 학문을 훈고학(訓고學)이라고 한다. 이런 전통에 반기를 든게 바로 유학(儒學)을 새롭게 해석한 주자다. 보망장 사건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체제를 확립한 주자가 '대학'(大學)의 내용을 스스로 작문해 130여자를 삽입한 것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 보망장' 사건이라고도 한다. '대학장구'는 주자가 정리한 '사서집주'(四書集註)의 하나로, 일종의 '대학'(大學) 해설서다. '대학'은 대인(大人)의 학문이란 뜻으로, 유학 정치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대학의 주요 사상은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으로 요약된다. 삼강령은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으로 정치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팔조목은 이 삼강령을 달성하기 위한 실천 덕목으로 △평천하(平天下) △치국(治國) △제가(齊家) △수신(修身) △정심(正心) △성의(誠意) △치지(致知) △격물(格物)이다.
주희는 이 팔조목 중 격물치지에 대해 문맥이 끊어져 없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경문을 보충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마음은 신통하여 모든 걸 알고 세상의 사물(사건)은 모두 이치(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직 이치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아 지식이 완전해지지 않았다.그래서 '대학'에서 먼저 가르쳐서 학자로 하여금 세상의 사물(사건)을 겪게 하여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바탕으로 하여 더욱 환히 밝혀내서 궁극의 상태에 이르도록 한다. 힘을 오랫동안 쏟다가 하루아침에 대나무가 갈라지듯이 모든 이치가 하나로 꿰뚫게 되면 사물의 겉과 안 그리고 미묘한 부분과 거친 부분 모두에 미치게 되고 내 마음의 온전한 모습과 커다란 쓰임이 분명해질 것이다"(蓋人心之靈莫不有知, 而天下之物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敎, 必使學者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라는 문장이 주자가 보충한 것이다.
이런 '개경'(改經)은 훈고학의 전통에서는 경천동지할 일이다. 주자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를 독선적이고 오만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진리와 학문을 향한 이런 주자의 태도는 이데올로기로 굳어져가는 학문적 권위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 하다. 주자는 정이천(程伊川)과 장횡거(張橫渠)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전박불파'라는 어구를 사용했다.
사상이나 학문도 굳어져가면 자칫 오히려 인간을 옭매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늘 나의 생각이 치우치고 고루한 건 아닌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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