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가상자산위원회는 올해 2분기 비영리법인과 가상자산거래소를 시작으로 하반기 상장사, 전문투자자 등록 법인, 향후 일반법인까지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가상자산위원장)은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는 개인에 비해 자금 세탁과 시장 과열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 법인의 실명거래 계좌 발급을 제한해 왔다"며 "하지만 법인 위주로 시장이 조성된 해외 사례와 국내 기업의 블록체인 등 신사업 수요 증가, 글로벌 기준 정확성 제고 측면에서 법인의 시장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계좌발급을 지원하고 있는 검찰과 국세청, 관세청, 지자체 등 법집행기관과 비영리법인, 가상자산거래소의 시장 참여를 가장 먼저 허용하기로 했다. 비영리법인과 거래소는 내부통제기준과 거래 가능한 가상자산의 종류, 물량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거래가 가능하다.
먼저 올해 하반기 이후 투자와 재무 목적의 거래가 시범 허용된다. 상장법인 2500여개사와 전문투자자로 등록한 법인 약 1000여개사가 대상이다. 다만 가상자산 시장 리스크의 금융시장 전이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한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역시 같은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우선 전문투자자 시범 허용 경과를 확인하고, 2단계 입법과 외환, 세제 등 관련 제도가 정비되면 일반법인의 거래까지 전면 허용을 검토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당국의 규제 완화 정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2017년부터 이어진 금융위의 규제일변 정책이 변화하면서 국내 산업 활성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당국은 2017년 모든 형태의 가상자산 발행을 금지하고, 이후 거래실명제와 특정금융정보법 시행,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제정 등을 발표해 왔다.
이 같은 규제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가 가능한 주체는 개인으로 한정되는 반면, 해외에서는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훨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코인베이스 전체 거래량에서 리테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미만에 불과했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법인의 가상자산 참여 로드맵 발표로 금융당국의 가상자산 시장 개방에 대한 기대는 이어질 것"이라며 "관련 내용이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이슈로 작용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정책에 진전을 보였다는 점은 향후 관련 시장에 대한 성장 기대를 높이는 소식"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과정에서, 특정 가상자산에 대한 쏠림이나 소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한 글로벌 시장과 다른 가격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시장을 지나치게 과열시키거나 과도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어 향후 법인이 거래할 수 있는 종류를 제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투자나 재무 목적의 거래도 모든 가상자산을 대상으로 거래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만약 금융당국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엑스알피(XRP) 등 대표적인 가상자산만 거래를 허용하거나, 일정 금액 이상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거래 가능 종목을 제한할 경우 해당 자산이 '정부가 공인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막혀있었던 법인의 거래가 허용되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기대가 반영되며 '김치 프리미엄'이 발생할 수 있는데, 기대감이 특정 종목에만 반영되면 가격 왜곡은 더 커질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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