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업체와 미리 짠 현직 교사들이 모의고사 문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받는 '사교육 카르텔'의 검은 뿌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광범위하게 퍼진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23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 배제' 지시 이후 진행된 '사교육 카르텔' 단속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수능 전문 입시학원들이 킬러문항을 교묘하게 이용, 학생과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도록 만든 주범들의 꼬리가 잡힌 것이다.
18일 감사원이 공개한 '교원 등의 사교육 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공립·사립 교원 249명이 약 6년간 사교육 업체에 모의고사 문제를 제공하고 212억9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비위의 정도가 크다고 판단되는 공립 교원 8명과 사립 교원 21명 등 총 29명에 대해 관할 시도교육청에 징계 요구 및 비위 통보했다.
나머지 220명에 대해선 교육부에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적정한 조치를 하도록 통보했다.
이들 교원은 지난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사교육 업체와 '문항 거래'를 통해 1인당 평균 8500만원의 수입을 거뒀다.
지역별 거래 규모를 보면 서울·경기가 전체의 93.4%인 198억8000만원에 달했다. 특히 서울(160억5000만원·75.4%)의 경우 대형 사교육 업체가 집중된 대치동과 목동 등지에서 문항 거래가 많았다.
과목별로는 과학(66억2000만원), 수학(57억1000만원), 사회(37억7000만원), 영어(31억원), 국어(20억8000만원) 등의 순으로 컸다.
사교육 업체와 돈을 매개로 유착한 교사들은 수능과 모의평가 문항, EBS 교재 집필진으로 참여한 이들이었다. 업체의 문항 제작팀이나 강사는 이들 교사의 명단을 입수하거나, 인맥·혈연·학연 등을 통해 접촉함으로써 거래가 시작됐다. 사교육 업체와 교원으로 형성된 '문항 공급조직'은 문항 유형과 난이도별 단가 등을 정해 주로 구두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족집게 강의'를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에 맞춰 업체들이 교사들에게 거액을 건네고, 그 대가로 '킬러 문항'을 제공받는 카르텔이 형성된 것이다.
킬러 문항을 매개로 형성된 '이권 카르텔'은 조직 규모를 키워가며, 공교육의 정상적인 교육관리 체계를 오염시켰다. 일부 교원은 아예 사교육 업체에서 꾸린 문항 제작팀에 가담해 팀장 역할을 수행하면서 알선비 명목으로 수억 원을 추가로 받았다. 교원이 출간 전인 EBS 교재 파일을 유출하거나 판매한 문항을 학교 시험에 출제하고, 문항 거래 사실이 있는데도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사례도 확인됐다.
교원 A씨는 대규모 문항 제작팀을 만들어 자기 배우자가 설립한 문항 공급 업체에 문항을 판매한 이도 있었다. 이 업체는 2019~2022년 18억 9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해당 교원은 3억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교원 B씨는 모의 고사 문항을 꾸준히 제작·판매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8개 업체로부터 6억1000만원을 챙겼다.
EBS 수능 연계 교재 집필진인 고교 교사 C씨는 강사 D씨로부터 EBS 교재를 변형한 문항 판매를 의뢰받고, 2015~2021년 8000여개의 문항을 판매하고 5억 8000만원을 받았다.
감사원은 "교원들이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제작·판매하고 돈을 받는 행위는 국가공무원법 64조와 청탁금지법 8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문제 판박이 논란'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처분 결과도 내놨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이었던 국립대 대학교수가 자신이 2022년 감수한 EBS 교재 문항을 수능 영어 지문 23번 문항으로 출제한 이 사건은 '사교육 카르텔' 논란에 불을 지폈다.
감사원은 대학교수에 대해 소속 국립대에 주의를, 문항 출제 및 이의 심사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평가원 담당자 3명에 대해 평가원에 문책(해임·정직·경징계)을 요구했다. 또 '킬러 문항' 출제를 방치해 '불수능'을 초래한 평가원에 주의를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