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미국 증권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주주 결의안을 차단키로 했다. 미국에서 환경·사회·거버넌스(ESG) 관련 주주제안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ESG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간 국내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처럼 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180도 달라진 조치로 인해 국내 상법 개정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기업 이사회가 주주 결의안을 더 쉽게 차단할 수 있도록 SEC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공화당 소속 SEC 위원인 마크 우예다를 SEC 위원장 직무대행에 지명한 이후 시행한 조치다.
SEC는 블랙록·뱅가드 등 금융사에 대해 더 엄격한 공시 요건을 적용하고, 기업들이 주주 간 의사소통 능력을 제한하는 것도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는 사소한 부분까지 거론하는 주주 결의에 대해 기업이 투표를 건너뛰기 쉽게 만든 것이자, 트럼프 1기 행정부 시대의 지침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미국 법조계에서는 이로 인해 탄소 배출 제한 등과 관련한 주주들의 요구에 대해 기업들이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SEC에서 유일한 민주당 소속인 캐롤라인 크렌쇼 위원은 "이번 변경은 올해 주주제안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인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이뤄졌다"며 "투자자와 기업 모두에게 불필요한 비용과 불확실성을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주제안 위임장 투표에서 제외되는 순간, 주주들이 제안할 수 있는 주제(독소 조항, ESG 문제 등)에 대한 제약이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미국 회사의 이사회는 주주를 대변하는 게 우선적이었다.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기본적인 역할로, 특히 신의성실 의무를 지니고 있어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에 국내에서도 미국의 신의성실 의무를 도입해야 한다며 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로 국내 상법 개정 움직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승욱 벤처시장연구원 대표 겸 한국외대 객원교수는 "행정부와 사법부가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제한적인 영향이 잇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전인구의 경제연구소' 전인구 대표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는 ESG 중 거버넌스를 박살내겠다는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지금은 국내에 영향이 없을 수도 있지만, 1년 정도 시차를 두고 미국과 비슷한 방향으로 따라가지 않겠나"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추가적으로 한다면, 우리나라도 '굳이 꼭 해야 하나' 라는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그는 "국내 투자자들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서 신의성실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글로벌 스탠다드를 해야 하는 미국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버리면 국내 투자자들도 많이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