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딥시크로 AI 영향력 확대
서방은 규제 개도국은 수용
미국 중심 AI 질서 흔드는 중국
중국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가 글로벌 AI 시장의 주도권 싸움을 가열시키고 있다. '저비용·고효율'을 내세운 딥시크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각국의 대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본·호주 등 미국과 동맹국들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문제 삼아 규제에 나선 반면 인도·러시아·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은 딥시크를 받아들이며 중국 AI 생태계를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AI 패권 경쟁이 지정학적 갈등과 맞물리면서 딥시크발(發) 'AI 신냉전'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1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최근 딥시크의 대형언어모델(LLM)을 자국 서버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AI 강국으로 꼽히는 인도는 그간 비용 문제로 AI 개발 속도가 더뎠지만, 딥시크 도입을 계기로 자체 AI 모델 개발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러시아도 딥시크 활용에 나섰다.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는 최근 딥시크의 오픈소스 코드를 기반으로 한 자체 AI 모델을 공개하며 중국과 AI 협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남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도 딥시크 확산 움직임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 인텔리전스의 레오 리우 빈싱 국제 비즈니스 부사장은 지난 1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차이나 콘퍼런스'에서 "(딥시크의 등장은) 말레이시아의 스타트업들에 매우 좋은 기회"라며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혁신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도 딥시크 기술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저비용으로 고급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앞세워 AI 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딥시크가 국경을 넘어 중국의 영향력을 뻗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는 셈이다.
크리스토퍼 탕 미국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비용 고효율의 딥시크 모델이 AI 개발 분야에서 '민주화'를 이뤄내고 있다"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기술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은 딥시크 차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과 호주는 정부 기관 내 딥시크 사용을 금지했고,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은 딥시크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문제 삼으며 규제 강화를 검토 중이다.
한국 역시 지난 15일부터 딥시크의 신규 앱 다운로드를 차단하며 사실상 '딥시크 대항군'에 합류했다. 대만 민진당 정부도 이미 지난달 공공부문에서 딥시크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서방이 딥시크 차단에 나선 것은 단순한 보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AI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이 한층 격화되면서 AI 시장에서도 진영 대결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 하원은 최근 정부 기관 내 딥시크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유럽 주요국들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딥시크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딥시크를 활용해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AI는 폐쇄적인 미국 AI와 달리 개방적이어서 개도국과 유럽에 혜택을 안길 것"이라며 딥시크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중국의 AI 개방 전략은 2013년 시작된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와 유사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AI 기술을 매개로 미 패권의 약한 틈새를 파고들어 개발도상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딥시크를 중심으로 한 '토종 AI' 육성이 본격화되고 있다. 베이징시, 광저우시, 톈진시 등 지방정부들은 앞다퉈 딥시크를 행정 업무에 도입하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해 교통 체증 해소, 실종자 찾기 등 다양한 대민 서비스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주요 IT 기업들도 딥시크 도입에 적극적이다.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는 딥시크 모델을 활용해 AI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고 증권사 약 20곳은 한 달 내로 딥시크 기반의 금융 AI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교육계에서도 딥시크 활용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주요 대학들은 딥시크 교육과정을 개설하며 AI 인재 양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직접 나서 AI 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 17일 열린 민영기업 심포지엄에서 시 주석은 중국의 IT·테크 기업들에게 국가 발전을 위한 기여를 독려하며 AI 산업 육성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과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중국중앙TV(CCTV) 메인 뉴스에서는 딥시크를 포함한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을 조명하며 '토종 AI 띄우기'에 힘을 실었다.
전 세계 AI 시장이 '딥시크발 AI 신냉전'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면 중국과 서방의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AI 반도체 공급망을 쥐고 있는 미국과 고성능 오픈소스 AI 모델을 내세운 중국 간 경쟁이 심화될수록 AI 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AI 통제 정책이 강해질수록 개도국들은 더욱 딥시크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