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戰 종전협상, 평화인가 또 다른 종속인가](http://contents.dt.co.kr/images/202502/2025022102109969061001[1].jpg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戰 종전협상, 평화인가 또 다른 종속인가")
◆우크라 배제된 '속전속결' 종전 협상
발발 3년이 다 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계기로 급속도로 종전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둘러 전쟁을 끝내려는 배경에는 '중국 견제'가 있다. 그는 미국의 최우선 과제가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등이 미국의 외교·군사적 자원을 분산시키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화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대중국 견제에 집중하려는 모양새다
그는 임기 초반 6개월 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고, 외교력을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는 것을 목표로 잡는 듯 하다. 또한, 전쟁을 종식한 대통령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배경 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취임 후 첫 통화에서 양국 간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끌어냈다. 이어 첫 실무협상이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열렸다. 미국에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러시아에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보좌관,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국부펀드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 등이 참석했다.
약 4시간 30분간 대화한 이날 협상에서 양국은 전쟁 종식 방안을 다룰 고위급 협의체를 구성하는 데 합의했다. 미·러 정상 간 대면 회담도 빠르면 이달 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년간 대규모 사상자와 물적 피해 속에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점을 감안하면 종전 협상의 장이 마련된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넘어야할 산들이 많다.
우선 우크라이나 및 유럽 동맹국에 대한 '패싱'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이번 협상에 초대받지 못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뺀 협상은 인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젤렌스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약소국의 비애다.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유럽도 종전 논의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유럽 정상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지난 17일 긴급 회동에 이어 19일에도 화상회의를 열어 미·러 간 종전 협상 대응책을 논의했다. 일단 우크라이나 파병안이 거론됐으나 국가간 견해차가 커 진통을 겪고 있다. 파병을 놓고 영국, 프랑스, 스웨덴은 찬성하고 독일, 폴란드는 반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에게 일방적으로 양보를 강요당하는 '더티 딜'(dirty deal)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영토 문제, 안보 보장과 관련된 중요 사안들이 우크라이나의 동의 없이 결정된다면 이는 새로운 갈등과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거래'로 변질된 동맹관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도 소위 '거래 상대'로 본다. 가치 동맹에 앞서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좇는다. 자유와 정의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뒷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내내 끈끈한 유대를 과시했던 미국과 유럽 간 동맹이 차차 금이 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입수한 '우크라이나 재건투자기금' 협정 초안을 보면 피부에 와닿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지금까지 미국으로부터 받은 지원의 대가로 5000억달러(약 720조원)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이 부담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보면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패전국 독일에 부과됐던 것보다 더 크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가 갚기 불가능한 수준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후 재건을 넘어선 또 다른 형태의 '경제적 속박'을 의미한다. 전쟁으로 이미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국가에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지운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불안 요소를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강대국이 정하는 '평화'
이번 종전 협상은 국제사회에 큰 시사점을 남긴다. 냉혹한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이다. 침략당해 피폐해진 우크라이나는 안중에도 없이 종전 과정에서 이권을 챙기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당초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민주주의와 국제질서의 수호'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러나 그 대가가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종속이라면 이는 재건이 아니다.
미국이 진정한 동맹이라면, '거래'가 아닌 '협력'의 정신을 우선해야 한다. 주판 알을 튕겨 동맹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면, 이는 미국의 신뢰를 약화시킬 뿐이다. 앞으로의 종전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가 실질적인 평화와 자주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크라이나는 또 다른 방식의 종속으로 내몰릴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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