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트럼프, 美 빅테크 차별 보복… 한국 온플법 `속도조절`

입력: 2025-02-23 18:12 김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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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디지털규제 대응 검토 지시
한국 망 사용료 등 지적 가능성
인앱 결제 강제 금지법 제동 우려

한국 테크산업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태풍에 휩쓸릴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기업에 불리한 외국 정부의 정책과 규제에 보복 관세로 대응하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국내 플랫폼·테크기업들에도 규제 불확실성 리스크가 닥쳤다.

장기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신중론으로 돌아설 경우 규제 부담 완화라는 반사이익이 기대되지만, 반대로 빅테크의 끼워팔기나 인앱결제 강제 등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미국 기업에 피해를 주는 '외국 정부의 일방적이고 반경쟁적인 정책과 관행'을 조사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하는 각서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재무부, 상무부,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적절한 조치를 권고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면서 미국 기업들이 외국 정부의 규제나 세금부과를 신고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서에서 "외국 정부가 특히 기술분야의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역외 권한을 행사해 이들 기업의 성공을 방해하고, 미국이 아닌 자국의 복지를 위해 미국 기업의 이익을 도용하고 있다"며 "관세를 부과하고 기타 필요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외국 정부의 정책이 미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 세금, 규제, 지식재산권 침해 행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이로 인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하는 플랫폼 규제을 비롯해 미국 빅테크 기업의 불공정행위 개선조치 등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서에서 구체적인 반경쟁적 정책과 관행 사례로 △국경 데이터 이동 제한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에 현지 콘텐츠 제작 자금 부담 △망사용료 부과 △인터넷 종료 수수료 부과 등을 명시했다. 한국의 경우 지리정보 반출 금지, 망사용료 부과, 인앱결제 강제 금지, 끼워팔기 금지, 방송통신발전기금 등의 규제를 시행 중이거나 시행 준비를 하고 있어 해당되는 사안이 많다.

특히 USTR이나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등은 그동안 한국 정부에 지리정보 반출 금지나 외국 기업에 대한 망사용료 부과 추진 등을 비관세장벽이라고 주장해 왔다. 또한,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 사실상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반대해왔다.

정부와 정치권은 트럼프 정부의 보복 관세 가능성이 커지자 신규 규제 도입에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무역마찰 가능성이 있는 규제 법안을 자제하도록 건의했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네이버 본사를 방문해 인공지능(AI) 산업 진흥과 플랫폼·테크 기업 지원을 약속했다.

정무위원회는 여야 간 온플법에 대한 입장 차가 커 논의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무위 소속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9일 전체회의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지명자가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불필요한 도발로 지적했다"며 "공정위가 계속해서 플랫폼 규제를 추진할 경우 한미 통상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국 플랫폼 기업을 차별해 규제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이지, 일반적인 독과점 플랫폼 규제 입법을 통상 이슈로 삼겠다는 내용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정무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경쟁촉진 기반을 마련하겠다. 국민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은 구독형·버티컬·모바일 플랫폼의 불공정 관행과 소비자 기만행위를 집중 점검하고 시정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미국의 반발은) 공정거래위원회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국가 전체 경제와 관련된 이슈인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봐야 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과거 확고하게 온플법 추진 의지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한 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분위기다. 온플법이 국내 기업 역차별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해온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은 규제 신중론으로 돌아설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내심 반기는 모습이다.

다만, 공정위가 진행 중이던 구글의 유튜브뮤직 끼워팔기 사건 조사나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추진 등에 제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둘러싼 정치논쟁으로 허송세월 하느라 멈춰있던 방송발전기금이나 망사용료 현안도 오리무중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의장인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보에 "정부·정치권의 플랫폼 규제 제정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단편적으로는 글로벌 빅테크 규제가 위축되면서 국내 기업 역차별 등 산업별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글로벌 빅테크를 규제해서 국내 산업을 진흥하거나 국내 플랫폼만 규제해 역차별 하는 것은 양측 모두 장기적으로 산업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예측 가능한 규제 범위에서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기업이 경쟁하도록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박성호 인터넷기업협회장은 "디지털 산업에 새로운 규제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불필요한 규제 논의로 미국과 마찰을 일으키면 국내 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며 "단,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해서는 현행법으로 국내 기업이든 글로벌 빅테크든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 기업만 견제하는 게 아니라 국내 기업 역시 규제 대상이기 때문에 미국도 나설 명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