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안팎의 정체성 논쟁에도 연일 '중도보수론'을 주장하고 있다. 조기 대선 정국을 염두에 두고 국민의힘을 '극우'로 밀어내고, 중도층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보수 어젠다도 선점하고 지지율에도 효과를 보는 모양새다. 실제 대선 정국에 돌입했을 때, 이 대표의 전략이 현실화될 지 주목된다.
이 대표는 연일 '중도보수론'을 꺼내들고 있다. 민주당의 전통적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분배보다 성장을 강조하고, 상속세 공제 현실화와 근로세제 개편, 대기업 세액 공제 등 감세 이슈를 던지고 있다. 안보도 진보 진영에서 고수해 온 친중 노선 대신 한·미·일 협력과 대일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통적 지지층이 이탈하지 않도록 완급 조절도 한다. 이 대표는 최근 반도체특별법의 쟁점인 '주 52시간 예외 적용'에 찬성할 수 있을 듯한 입장을 취했다가 노동계 반대가 거세지자 기존 입장을 유지한 채 양대 노총을 찾기도 했다.
민주당의 스펙트럼을 중도보수까지 넓히려는 포석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국민의힘을 '극우 정당'으로 밀어내, 전통적인 정치 지형을 깨겠다는 의도와도 연결된다.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아니라 '중도보수 대 극우'의 싸움구도로 만드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중도정당"이라며 "국민의힘이 극우본색을 드러내며 형식적 보수역할조차 포기한 현 상황에선 민주당의 중도보수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전략이 일정 부분 효과도 거두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보수 아젠다를 선점당했다. 이 대표가 이슈를 선점하면 이를 비난하는 방식의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도 이 대표의 '중도보수론'을 비난하면서 과거 진보적 이념 성향을 집중 부각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이 대표가 문재인 정부보다 더욱더 좌편향이다. '기본 사회'는 과거 공산주의자가 떠들었던 유토피아적 망상과 다르지 않다"면서 "이재명표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반기업·반시장·반자유 좌파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중도층 지지율 추이에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23일 공개한 '정권교체론'과 '정권연장론' 조사 결과(에너지경제신문 의뢰, 조사기간 20일~21일, 무선100% 자동응답,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를 보면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가 49.0%,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은 45.3%로 집계됐다. 1주일만에 다시 오차범위 내로 좁혀지긴 했지만, 중도층 내에서는 정권연장(38.3%)보다 정권교체(56.5%) 쪽이 많이 집계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21일 발표한 조사 결과(조사기간 18~20일,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도, 민주당은 중도층의 42% 지지를 받은 데 비해 국민의힘은 22%에 그쳤다. 20%포인트의 격차를 보인 셈이다.
민주당 내 친명(친이재명)·비명(비이재명)간 이념 정체성 논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양상이다. 이 대표가 비명계 대권 잠룡들과 연쇄 회동을 하면서부터다. '비명횡사'(비명계 인사 낙천) 공천 당사자로 꼽히는 박용진 전 의원은 24일 CBS 라디오에서 이 대표와 지난 21일 회동한 결과를 전하면서 "정체성의 문제가 아닌 득표 확장성 측면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선거 캠페인 전략"이라고 호평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논쟁이 막 시작된 지난 19일 SNS에는 비판적 입장을 냈으나, 23일에는 "탄핵과 대선 과정에서 더 넓게 국민들을 아우르는 국민정당이 되겠다는 취지로 본다"고 평가했다.
대선 정국에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21일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 "이 대표의 현실감이 굉장히 좋다고 본다"며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실질적으로 국민이 바라는 바가 뭐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국민의힘에 대해선 "이 대표가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따지지 말고, 우리나라가 당면한 현상에 대한 인식을 철두철미하게 해서 대한민국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복안을 제시해야 미래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을 리드해 갈 만한 주인이 없다"고 혹평했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