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서울시 서울의료원장
![[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1918년, 독감의 시작](http://contents.dt.co.kr/images/202502/2025022602102269058001[1].jpg "[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1918년, 독감의 시작")
미국에서는 그 해 2월 말에서 3월 초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이 젊은 군인들에게 발생하여 처음에는 고열, 오한, 전신이 아픈 증상을 보이다가 심한 경우에는 피가 섞인 거품 같은 가래를 뱉으면서 호흡 곤란으로 죽어갔다. 매우 빠른 속도로 퍼지다가 7, 8월에는 저절로 소강상태가 되었지만 8월 말부터 훨씬 심한 증상과 사망률을 보이며 다시 유행했다.
보스턴 북쪽의 군인 징집소인 데븐 캠프에 소집된 4만5000명의 20%가 폐렴까지 진행됐으며, 필라델피아는 선박 건조를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했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감염이 확산됐다. 군인들과 병든 노동자들의 이동에 따라 급속히 전국으로 확산됐다.
유럽에서는 4월에 프랑스군, 5월에는 영국군을 중심으로 감염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 전 해인 1917년에 중국 북부에서 이미 크게 유행했지만 기록이 매우 부실했다. 비록 스페인에서도 800만명이나 감염됐지만 특별히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릴만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전쟁 중이어서 보도가 통제된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보도가 자유로웠던 스페인이 집중적인 보도 대상이 되면서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세계인구는 17억이었는데 5억명 이상 감염됐고 1700만~50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억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는 인구 관리가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총독부 연보에 의하면 당시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742만명이 감염되어 14만명이 희생됐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때 920만명, 제2차 세계대전 때 1590만명이 전쟁으로 희생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1918년, 독감의 시작](http://contents.dt.co.kr/images/202502/2025022602102269058001[2].jpg "[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1918년, 독감의 시작")
구스타프 클림프, 막스 베버, 베네딕트 15세 교황 같은 유명 인사들 역시 독감으로 사망했지만 1919년 4월부터 더 이상은 전파되지 않고 주저앉았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독감에 걸리면서 생긴 집단면역효과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 후 독감은 매년 유행하는 계절병으로 정착되었고 지금은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됐다.
그러나 현재도 독감으로 인한 호흡기 합병증으로 40만명, 심혈관 합병증으로 30만명 등 모두 70만명이 매년 사망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질환이 있는 고령자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스페인 독감'을 대유행시킨 바이러스의 세부 구조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됐다. 이런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세포 내에서만 생존할 수 있지만 온도가 매우 낮으면 보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북극에서 가까운 지역의 얼음 속에 묻혀있는 스페인 독감의 희생자의 폐에서 바이러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미국 병리학자 훌턴이 1951년 알래스카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소녀의 폐를 확보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바이러스 분석에 한계가 있었다.
그 후 1995년 토벤버거가 당시 보편화된 DNA 혹은 RNA를 증폭하여 PCR이라는 검사를 통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분석을 시도했다. 샘플 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미군 병리학 연구소에서 1917년 이후 보관된 조직 표본을 6개 찾아 분석한 결과, 샘플이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다소 불완전하게 분석된 결과를 1997년 3월 사이언스지에 게재했다.
그러자 1951년에 이미 분석을 시도했던 당시 72세의 훌턴이 이 글을 읽고 토벤버거에게 연락했다. 두 사람은 같이 알래스카로 가서 2미터 깊이에 묻힌 30대 여성의 얼어서 잘 보존된 허파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훌턴은 유족과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다. 드디어 1918년 유행했던 바이러스의 RNA를 확실하게 분석해서 'type A H1N1'으로 확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행한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체계화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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