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26일 저서를 출간하면서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기억을 비롯해 김건희 여사 등이 얽힌 정치권 비화를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최후진술까지 '대통령의 시간'을 기다린 뒤 '한동훈의 시간'을 도모하는 모양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출간한 '국민이 먼저입니다'에서 윤 대통령의 지난해 12월3일 계엄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과정, 2023년말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된 시점부터 김 여사 관련 특검법 갈등과 비선 개입 의혹 등을 회고한 서술을 남겼다.
그는 12·3 비상계엄 선포를 인지한 직후 여의도 국회로 향하던 중 한 '여권 인사'로부터 "체포되면 정말 죽을 수 있다"며 "즉시 은신처를 정해서 숨어라. 추적되지 않도록 휴대폰도 꺼놔라. 가족들도 피신시켜라"라는 제보와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먼저 당사로 향한 한 전 대표는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와 만났으나, '국회 이동' 필요성을 놓고 이견을 빚었다고 한다. '원내대표 명의로 계엄 반대 입장을 명확히 내달라'는 요청에도 "당대표가 입장을 냈으니 별도 입장을 낼 필요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12월4일 새벽 계엄종식 후, 오후 중 한 전 대표는 권성동·김기현 등 중진의원들과 대통령실을 찾아 윤 대통령을 만났다. 당 쪽에서 '국회 해산'을 먼저 거론하지 않았는데 윤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말한 점을 의문시했다.
한 전 대표는 또 국회의 탄핵안 2차 표결(지난해 12월14일) 전 대통령실 관계자로부터 '당이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때까지 몇번이고 탄핵안을 계속 부결시켜달라'는 대통령의 요구를 전달받았다고 폭로했다. 임기단축이나 자진사퇴 의사도 없었단 것이다.
2차 표결 전날 그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한번 더 탄핵을 부결시키자'고 제안해왔지만 자신은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리란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며 거절했다고 밝혔다. 탄핵 반대 의원 일부와도 접촉해 찬성표를 던져달라고 요청했다고도 한다.
한 전 대표는 2023년 12월 하순 '(내정된) 비대위원장직을 포기하고 (법무부)장관직도 사퇴하라'는 윤 대통령의 요구를 받았다가 철회됐는데, 김 여사 쪽이 '김건희 특검을 총선 이후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 주체를 자신으로 오인한 탓이었다고 봤다.
당시 비대위원으로서 '명품백 수수' 등 김 여사 논란에 비판적이던 김경율 회계사 거취를 놓고도 '비대위에서 내보내라'는 대통령실의 요구가 많았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왜 김 회계사 발언을 통제 못 하느냐'고 나를 압박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른바 '여사 라인'에 관해선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2024년 총선 전후까지 용산에서 여러 사람이 쫓겨났고, 그 자리를 대신해 들어온 상당수 사람의 면면이 상식적이지 않았다"며 '비대위원장 취임 전 사퇴 요구' 원인으로 보기도 했다.
한 전 대표는 또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이재명'이란 소제목 아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성토했다. 그는 "이 대표의 '탄핵 놀이'는 '법에 명시된 계엄을 했다'고 주장하는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문제였지만 이 대표는 훨씬 '하드코어'"라며 "탄핵 29번이라니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나아가 "행정부까지 장악하면 사법부 유죄 판결을 막으려고 계엄이나 처벌규정 개정같은 극단적 수단을 쓸 수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이재명 정권 탄생을 막기 위해 계엄의 바다를 건너자"고 적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들을 만나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한다"고 반박했는데, 한 전 대표는 SNS 저격을 재개하며 "저는 기꺼이 '국민을 지키는 개'가 되겠다. 재판 잘 받으시라"고 맞받았다.
한편 이날 아침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부터 5호선 광화문역 4번출구까지, 한 전 대표 저서를 구매하려는 시민들이 100여m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개점 시각보다 1시간반 이른 8시쯤부터 인파가 몰렸다. '목숨 걸고 계엄을 막아낸 한동훈' 등이 적힌 응원 부스도 등장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26일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서 한 시민이 이날 출간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당대표의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한동훈의 선택'을 읽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