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 구역 간 거래 우선 허용
법정 상한분까지 용적률 매입
주민 협의로 실효성 확보 필요
법정 상한분까지 용적률 매입
주민 협의로 실효성 확보 필요
'용적이양제' 알아보니
미국 뉴욕 맨해튼 42번가, '원밴더빌트(사진)'는 지난 2020년 완공 이후 뉴욕에서 네번째로 높은 빌딩이자 맨해튼 마천루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맨해튼 중심가의 이 빌딩이 용적률만 약 3000%를 적용받아 93층 초고층 빌딩으로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인근 기차역 그랜드센트럴터미널의 용적률을 사왔기 때문이다.
그랜드센트럴터미널은 '뉴욕의 심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154년 전통의 세계 최대 기차역사이자 당대 프랑스에서 기원한 보자르(Beaux-Arts) 양식 설계로 아름다운 외관과 더불어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에서 단골로 등장해왔다.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1층 건축물인 그랜드센트럴터미널이 도심 개발의 바람을 피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뉴욕시가 지난 1968년 용적이양제를 도입한 덕분이다.
맨해튼 53번가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 인근 협소한 부지에 320m(82층) 높이로 가느다란 칼처럼 지어진 '수퍼 슬렌더' 빌딩 '53W53'이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이 건물을 설계한 장 누벨은 '53W53'을 "니들(바늘)"이라고도 부른다. '53W53'도 미국 최대 부동산 개발사인 하인스가 인근 MoMA와 성 토마스 에피스코발 교회의 가용 공중권을 8530만달러를 들여 사들여 지은 초고가 주거용 건물이다.
이 것이 바로 'TDR(Transfer of Development Rights)'로 알려진 도시 용적이양제다. 용적이양제는 경관·고도지구나 문화재 주변 지역 등 규제로 주어진 용적률을 다 사용하지 못하는 구역이 인근 개발 여력이 있는 지역에 용적률을 매매하도록 한 제도다.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에 위치한 신마루노우치빌딩(38층, 용적률 약 1760%)·그랑도쿄(43층, 약 1300%) 등 6개 빌딩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도쿄역의 용적률을 사들여 역사 보존과 고밀 개발을 모두 이룬 사례다.
해외 도시 용적이양제는 우리에게 바로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으로 10년 넘게 발전시키지 못했다가 올해 서울시가 '서울형 용적이양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서울형 용적이양제'를 통해 인접 구역 간 용적률 거래가 우선 허용되고, 법정 상한분까지 용적률을 매입할 수 있게 할 전망이다.
서울시는 현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강동구 '굽은다리역세권 활성화' 사업에 건축법상 '결합건축' 제도를 활용해 용적이양 과정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으며, 결과물을 토대로 실행모델을 완성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상반기 조례 제정 등의 절차를 거쳐 하반기에 시행할 계획이다. 시는 개발이 제한된 지역의 재산권 침해 문제가 해소되고, 기반시설 수용 용량이 충분한 지역에 추가 개발을 허용해 합리적으로 도시 밀도를 관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용적률을 구매했더라도 법적상한용적률 내에서 거래가 가능하다. 예컨대 양수지역이 일반상업지역이라면 국토계획법에 따라 1300%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공공기여 등을 통해 추가 용적률을 확보해도 실제 상한용적률은 법적상한용적률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가 대다수여서 효용성이 클 것이란 관측이다.
구역별로 가격이나 부지 크기가 달라 실제 거래 단위는 용적률이 아니라 연면적이 될 전망이다. 양도지역(A)의 공시가가 1㎡당 500만원, 양수지역(B)은 1㎡당 1000만원인 경우를 가정하면 거래 시 2 대 1 교환 비율이 적용된다. A에서 4000㎡를 이양하면 B에선 2000㎡를 추가로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거래 가격은 미실현 용적의 가치를 반영해 산출한다. 시는 우선 공시지가나 감정평가로 선도지역의 용적률 가격을 산정한다는 계획이다.
핵심은 양도지역과 양수지역을 명확히 하고, 거래 시 기준을 잘 세우는 것이다. 김성기 서울시 도시공간전략과장은 "양도자들은 용적 교환 비율을 높게 생각하고, 양수자는 낮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어 집행부에서 적절한 교환 비율을 설정하는 게 주요 과제"라고 밝혔다.
지역 주민간 협의를 통해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따라야 한다. 현재 서울성곽 등 문화재가 몰려있는 서울 성북구 성북2구역은 성북구 신월곡1구역과 용적률을 주고받는 별도 조합형 결합정비사업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종의 '용적이양제'를 적용하는 것인데 지난 2016년 결합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뒤에도 각 구역 주민들의 의견 불일치로 진행이 불발될 뻔 한 것도 수차례였다.
한 뉴욕 현지 부동산 컨설턴트는 "서울의 경우 서구의 블록방식 도시구획이 아니라 한번도 거래된 적이 없는 용적률을 사고 팔기 위한 산정 기준이 명확하게 마련돼야 한다 "면서 "뉴욕의 경우도 용적이양제의 수혜가 일정 지역에만 쏠리는 등 이론과는 달리 개발 불균형이 더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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