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KB·대신 등 6곳서 적자
무리한 책임준공 사업 후폭풍
"NCR 산정방식 무의미" 지적도
무리한 책임준공 사업 후폭풍
"NCR 산정방식 무의미" 지적도
부동산 경기침체 장기화의 직격탄을 맞은 신탁사들의 손실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봤다. 업계에서는 금융지주의 '뒷배'를 믿고 책임준공(책준) 사업을 무리하게 수주해 온 신탁사들이 후폭풍을 맞고 있는 것으로 봤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14개 부동산신탁사 중 6개 신탁사가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무궁화신탁을 비롯해 교보·대신·신한·KB·코리아신탁이 적자를 봤다.
손실 금액이 가장 큰 곳은 신한자산신탁이었다. 2023년 500억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던 신한자산신탁은 지난해 308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매출 금액이 비슷한 우리자산신탁이 18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적자를 면한 것과 비교된다.
업계에서는 책임준공사업 규모가 대규모 손실을 결정지은 것으로 봤다. 지난해 계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가 커졌고, 이에 따라 책준 사업장의 충당부채가 급격하게 불어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신한자산신탁의 신탁계정대 대손충당금만 2269억원에 달했다. 전년 200억원 수준에서 10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충당부채 역시 278억원에서 1549억원으로 증가했다.
2023년 말 기준 신한자산신탁의 책준 사업장은 133건에 달했다.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 중 지난해 적자를 면한 우리자산신탁은 43건, 하나자산신탁은 47건으로 신한자산신탁이 2배 이상 많았다.
신한뿐 아니라 금융사를 지주사로 둔 신탁사들의 적자가 두드러졌다. 교보자산신탁이 240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KB부동산신탁(1133억원), 대신자산신탁(190억원)도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KB와 교보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다.
신탁사 중 손실 규모가 2번째로 큰 교보 역시 충당금이 빠르게 늘었다. 2023년 1029억원이었던 충당금은 지난해 3475억원으로 불어났다. 600억원 수준이던 충당부채도 1146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교보자산신탁 역시 책준사업 비중이 높았다. 2023년 말 기준 66건의 책준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해당 사업에 투입된 PF대출 금액만 2조원이 넘었다.
KB자산신탁 역시 책준사업이 72건에 달했다. 2023년 840억원 수준이었던 순손실 금액은 지난해 1133억원으로 확대됐다. 대손충당금이 1590억원에서 3440억원으로 늘어나며 순손실 규모가 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부동산신탁사 모두 경영환경이 어려웠지만, 적자를 기록한 기업은 업계에서도 유독 책준사업이 많았던 곳들"이라며 "뒤에 있는 금융지주사를 믿고 수익을 내기 어려운 사업장까지 수주를 욕심냈고, 해당 사업장들의 규모가 컸던 만큼 손실도 크게 돌아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재정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며 부동산신탁사 중 가장 먼저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무궁화신탁과 유사한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궁화신탁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1198억원으로 KB부동산신탁과 비슷했다. 교보자산신탁과 신한자산신탁의 순손실 규모는 무궁화신탁을 훌쩍 넘어섰다.
일각에서는 부동산신탁사의 재정위험을 보여주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산정 방식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눈 값인 NCR을 기준으로 신탁사의 재정위험을 평가한다. NCR이 150% 미만으로 떨어지면 경영개선을 권고한다.
하지만 NCR 산정에 사용되는 총위험액을 신탁사가 직접 산출하고, 준공기간이 넘지 않은 사업장은 위험성이 높아도 위험액에 반영하지 않는 등 부실한 관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한자산신탁은 지난해 3000억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2023년 말 신한자산신탁이 평가한 총위험액은 300억원도 되지 않았다. 당시 위험하지 않다고 평가했던 사업장에서 1년여 만에 2000억원이 넘는 충당금이 발생한 셈이다.
교보 역시 위험액을 261억원 수준으로 평가했고, KB부동산신탁도 274억원 수준이었다. 오히려 올해 적자를 면한 한국토지신탁이나 한국자산신탁 등이 1000억원 이상의 위험액을 산정했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위험액 산정은 올해도 이어졌다. 신한자산신탁은 지난해 말 위험액을 116억원으로 공시했고, 교보와 KB역시 250억원과 185억원으로 전년보다 줄였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금융지주 산하 신탁사들은 손실이 커져도 모회사에서 돈을 끌어와 자본을 늘리는 식으로 순자본비율을 맞춘다"며 "손실액 역시 최소한으로 잡아 수치만 보면 건실한 회사로 보이지만, 실제 사업의 위험성은 다른 어디보다도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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