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다] "안오른 게 없는데" … 물가 체감 양극화 심해진다

입력: 2025-02-27 18:29 강승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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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가는 물가체감 양극화
고유가·美 관세 등 불확실성 여전
소비자물가, 작년보다 2.2% 상승
저소득층 체감 물가상승률 심화
유통마진 감축 등 핀셋 지원 필요

외식 물가 지수 상승률 2.9% [연합뉴스]

"채소, 과일 뭐 하나 안 오른 게 없어, 내 월급만 그대로야." 물가 오르는 속도보다 월급이 적게 오르면서 가계가 체감하는 형편은 팍팍해졌다. 문제는 올해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고유가·고환율 상황에 더해 미국 신정부의 관세 정책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하면서, 물가 상승을 자극할 변수도 산적해 있다. 이런 가운데, 물가를 잡기 위한 정부의 뾰족한 대책은 보이지 않아 서민들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올해 소비자물가를 1.8%로 예상했지만, 새해 첫 달부터 빗겨나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5.71(2020=100)로 1년 전보다 2.2%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1.5%, 12월 1.9%에 이어 3개월 연속 상승하며 2%대로 올라섰다. 5개월 만에 2%대에 진입한 것이다.

올해 1월부터 소비자물가가 2%대 상승 기류를 보이자, 정부도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당초 예상했던 물가 상승률보다 높게 나타난 데는 공감하면서도 1월과 2월에는 대외불확실성이 큰 만큼 물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연초에 환율,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방 압력이 있는데, 연중으로 봤을 때 하반기로 갈수록 둔화 흐름이 될 것 같다"라면서 "2% 수준에서 등락은 좀 있을 것 같지만 2% 상승률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부연했다.

정부가 물가 안정론을 펼치는 사이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는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인다. 한국은행이 지난 20일 발표한 '2025년 1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120.18(2020=100)로 전월 대비 0.6% 올랐다. 지난해 11월(0.1%) 이후 석 달째 오름세다. 이달 오름폭은 2023년 8월(0.8%) 이후 1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뛴 것이다. 생산자물가는 소비재·자본재뿐만 아니라 기업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원재료·중간재 등까지 측정한 물가지수다.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기 이전 기업(생산자) 간에 거래되는 가격을 반영하며,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1월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하면서 지난해 1월(3.2%) 이후 1년 만에 최대 상승을 기록했다.

물가 상방 압력이 올해 초부터 각종 지표 감지되는 사이,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빠듯해지고 있다. 월급보다 물가 상승 폭이 커지면서 가계 부담은 더욱 가중됐다. 통계청 '국민 삶의 질 2024'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를 고려한 월평균 임금은 2021년 359만9000원에서 2022년 359만2000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이는 2011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최근 감소세로 전환한 것이다. 2023년에는 355만4000원으로 1년 전보다 3만8000원 감소했다. 즉 월급이 찔끔 오르는 동안 물가는 큰 폭으로 상승하며 가계의 실질 소득 감소로 이어졌다.

고유가에 1월 생산자물가 0.6% 상승 [연합뉴스]

문제는 물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은은 최근 저가와 고가 상품 간 가격상승률 격차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격차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한은의 '팬데믹 이후 칩플레이션(Cheapflation)과 인플레이션 불평등'을 보면 저가 상품 물가가 더 많이 오르면서 소득분위별 체감(실효) 물가상승률 불평등도 심해졌다고 꼬집었다. 2019년 4분기부터 2023년 3분기 소득 하위 20%인 저소득층의 1분위 계층 누적 체감 물가상승률은 13%였다. 같은 기간 소득 상위 20% 고소득층은 11.7%로 저소득층이 1.3%포인트(p) 높았다. 이는 저소득층이 저가 상품을 주로 소비하면서, 상대적으로 고소득층보다 물가 부담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득 간 분배도 악화하면서 저소득층의 물가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1~3분위 중·저소득층의 가구 순자산액(명목소득)은 1년 전보다 모두 떨어졌다. 가구순자산은 전체 가구의 평균 자산에서 평균 부채를 차감한 금액을 말한다. 소득 3분위는 지난해보다 783만원(2.3%) 떨어져 3억3722만원으로 집계됐다. 2분위는 2억3742만원으로 전년보다 1.6%, 1분위는 1억4974만원으로 2.0% 각각 감소했다.

1~3분위 중·저소득층의 가구순자산액이 줄어든 사이, 고소득층(4~5분위)의 자산은 오히려 늘었다. 4분위는 2023년 4억6944만원에서 2024년 4억8767만원으로 뛰었다. 5분위는 9억6825만원에서 10억3252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5분위와 1분위의 가구 순자산액의 차이는 8억8278만원으로 크게 벌어졌다.

이렇게 내수부진이 길어지고, 경기가 얼어붙자 정부는 긴급 진화에 나섰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최근 CJ제일제당, SPC삼립, 남양유업, 농심 등 17개 주요 식품 기업 대표와 임원들과 만나 물가 안정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송 장관은 "환율·유가 불안정, 미국 신정부의 대외정책 등 대외 여건 변화와 제품 원가 부담으로 물가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코코아, 커피 등의 높은 가격 유지, 통상임금 개편에 따른 인건비 상승, 에너지 비용 증가 등으로 식품 물가 상승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조 혁신, 기술 개발 등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여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 기조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일자리 근심처럼 긴 그림자 [연합뉴스]

이와 함께 정부는 생활물가 안정을 위해 11조6000억원 규모의 재정지원 계획을 내놨다. 지난해(10조8000억원)보다 8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예산은 농축수산물 할인지원, 에너지·농식품 바우처 등 물가 관리·대응에 투입하며, 상반기 80% 이상 신속 집행할 예정이다. 또 상반기 중 바나나, 파인애플 등 과일류 10종에 대한 관세율을 30%에서 0%로 인하해 수급 안정에 나선다. 기상 여건 등에 맞춰 비축량을 최적하게 관리하고, '신선 비축체계'를 올해 구축하기로 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부과 조치로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정부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면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가를 안정적으로 잡기 위해서는 농수산물의 사전적인 대책과 저소득층의 소비여력을 늘리도록 고용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창권 대전대 물류통상학과 교수는 "농수산물은 과거에 1차 산업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1차 생산, 2차 가공, 3차 유통을 하는 6차 산업으로 부르기도 한다"며 "농수산물과 원재료는 물가를 잡기 위해선 사전적인 조치가 필요한 만큼, 유통마진을 줄이는 농수산물시장 관련법을 개정으로 소비자와 생산자의 유통단계를 줄일 수 있는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저소득층은 물가가 올라가면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갖고 소비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물가 안정과 소비 진작을 위한 일회성 소비쿠폰보다 계층과 수요자에게 맞는 타케팅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강승구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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