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트럼프 관세대전에 글로벌 기업들 `미국으로 미국으로`

입력: 2025-03-04 17:24 장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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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회장, 미국에 146조 투자
日 혼다, 시빅 현지 생산 결정
현대차·기아 美공장 증산 검토

트럼프 발 글로벌 관세전쟁이 시작되면서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 수출 기업들의 고심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 일본 자동차 기업 혼다 등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지만, 국내 기업들은 비용 압박은 물론 노조 리스크 등 고려할 사항이 겹겹이 쌓여 쉽사리 현지 투자를 결정하기 쉽지 않은 처지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이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기자회에서 미국 지역에 1000억달러(약 146조원)를 추가로 투입해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이미 투자한 650억달러를 포함하면 총 1650억원을 투자하는 셈이다 . 웨이저자 회장은 이어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과 지원 덕분에 우리는 미국에서 첨단 칩 제조를 구축하는 여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확대된 투자는 앞으로 4년 동안 4만개의 건설 일자리를 지원하고 첨단 칩 제조·연구개발(R&D) 분야에서 수만 개의 고임금 하이테크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애리조나 등 미 전역에서 2000억달러 이상의 간접 경제 산출을 창출할 것"이라며 미 경제 기여를 강조했다.

일본 혼다는 차세대 시빅 모델을 멕시코가 아닌 미국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혼다가 당초 멕시코 과나후아토에서 차세대 시빅 하이브리드 모델을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생산기지를 미국 인디애나주로 변경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반도체, 자동차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대응을 위해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를 결정한 반면, 국내 기업들은 아직 셈법을 논하는 모습이다.

내수 시장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갑작스런 대규모 해외 투자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전산업생산지수(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는 111.2로 전달보다 2.7% 감소해 2020년 2월(-2.9%) 이후 4년11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앨라배마(현대차), 조지아(기아) 공장과 함께 조지아주 전기차 신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의 증산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칫 국내 수출 물량이 미국으로 이전할 경우 노조의 반발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생산 기지간 공급망 조절이 필요하다. 현대차 노조는 2021년 국내 일감 유지 차원에서 미국서 생산하던 쏘나타·아반떼 중 7만대를 국내로 이전하고, 대신 투싼을 미국서 생산하기로 한 경험도 있다.

지난 2022년 10월 미국 조지아 주 브라이언 카운티 전기차 전용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인근의 서배너 '엔마켓 아레나'에서 진행된 기공식 2부 행사에서 조지아 지역주민들이 전시 차량을 관람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제철은 10조원 규모의 미국 제철소 건설 등의 대규모 투자를 검토 중이지만, 최근 임단협(임금·단체협상)과 관련해 노사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라 부담이다. 금속노조 현대차그룹사 지부는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관세 부과와 미국 내 생산공장 증설·신설을 통한 자국민 고용확대를 요구하고 있다"며 "대내외 무역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현대제철은 미래의 생존전략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도 기술개발 소식도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국인 캐나다·멕시코에도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 현대차·기아와 동반 진출한 부품사들도 타격이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KBI동국실업은 작년 6월 400억원을 투자해 멕시코 공장을 증설했고, HL만도도 2023년부터 멕시코 공장을 증설하는데 2450억원을 쏟아부었다. 현대모비스, HL만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등 미국에 공장을 둔 부품사들도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식의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게 업계 전언이다.

멕시코에 생산 기지를 둔 가전도 셈법이 복잡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트럼프 1기 당시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 대응을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렸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현지 생산을 더 늘릴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점에서 양사는 현재 시나리오별 검토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미 CES 2025에서 "삼성전자는 공장을 꽤 많이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전했고, 조주완 LG전자 대표도 "생산지 조정, 스윙 생산(여러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체제)을 통해 관세 정책에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미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기로 하고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상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보조금 지원 여부조차 불투명해져 보조금 확정과 관세 대응이 우선인 상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때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주고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최대한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도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확실한 합의를 통한 현명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우진·임주희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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