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부터 캐나다·멕시코와 중국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관세 정책이 본격화 된 가운데, 지난 1기 당시와는 다른 상황으로 기업들의 대처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탄핵 정국이었지만, 사실상 정권교체기였던 당시 상황과 달리 지금은 여전히 여야가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응력은 한층 더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미주본부가 4일 내놓은 '캐나다·멕시코 관세 부과와 수입 자동차 관세 시행 관련 논쟁'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상무부 보고서를 기반으로 즉각적인 자동차 관세를 부과할 경우, 보고서의 유효성을 둘러싼 논쟁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당시 수입 승용차에 최대 25%, SUV에 35%의 관세를 부과하려 했지만 이를 철회했다. 당시 상무부는 자동차·자동차부품 수입이 국가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도 "한국산 자동차·부품의 경우 한미 국가 안보 관계와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을 고려해 관세 면제 대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엔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를 시사하고, 이달 중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국인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를 한달 유예했지만, 결국 예정대로 관세 정책을 시행하기로 해 타 산업군도 비슷한 결론이 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국가안보 조사를 실시한 후 이를 근거로 자동차 관세 부과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신규조사는 최소 1년 이상 소요가 예상돼 다음달 2일 관세 부과는 곤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오는 12일부터는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 관세가 부과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당시에도 철강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려 했지만, 국내 정부의 발빠른 대응으로 쿼터 협상에 내서 급한 불을 껐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 때도 쿼터 물량 확대 등을 타진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가운데, 국내 정치 상황으로 협상력이 크게 취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LG전자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세탁기 세이프가드 대응을 위해 미 현지 생산을 늘린 만큼, 추가적으로 생산 라인을 조절하기엔 상황이 모호하다. 글로벌 생산지의 공급망 조절도 이미 풀(Ful)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조정이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LG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1~3분기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의 글로벌 생산기지의 가동률은 각각 모두 100%를 넘는다.
이 외에 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트럼프 1기 당시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지만, 현재는 미 정부의 보조금 지급 여부마저 불투명해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세울 수 있지만, 이들과 동반진출한 협력사나 중소·중견 수출 기업들은 자체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다음달 2일부터는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도 부과하겠다는 입장도 재확인시켜 국내 수출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정성태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날부터 발효되는 미국의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에 대한 관세율 인상이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올해 -1~2%포인트(p) 내외로 추정된다. 자동차, 가전 등이 멕시코에서 생산되고 관세율 인상으로 미국, 멕시코 등의 소비 둔화도 예상된다"며 "만약 25%의 상호 관세율이 부과되는 경우 미국에 대한 수출 둔화, 주요 교역 대상국의 수출·경기 부진 등으로 올해 한국 수출은 기존 당사 전망치 5%에서 -5%로 낮아질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