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해킹, 60%가 북한 소행
금융거래 막혀 외화 조달수단으로
제재만으론 한계… 국제공조 필수
금융거래 막혀 외화 조달수단으로
제재만으론 한계… 국제공조 필수
가상자산 해킹 피해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3조원 넘는 암호화폐가 털렸다. 이 중 60%가 북한의 소행으로, 북한은 해킹으로 거액을 빼돌려 핵 개발과 정권 유지에 쏟아붓고 있다. 국제 사회가 사이버 보안을 강화하고 있지만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북한의 해킹 부대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가상자산 시장이 계속해서 '해커들의 금고'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다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는 지적이 나온다.
◇가상자산 해킹 탈취액 1년 새 21% 증가… 61%가 북한= 5일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 해킹으로 탈취된 금액은 총 22억달러(약 3조2023억원)로 전년 대비 21% 증가했다.
체이널리시스는 "지난해 해킹 피해액은 최소 22억달러지만 추가적인 데이터가 확보되면 최종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며 "과거 데이터를 보면 해당 연도의 해킹 피해액은 시간이 지나고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더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해킹 피해액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단일 해킹으로 2조원이 빠져나가는 일도 발생했다. 세계 2위 가상자산거래소 바이비트(Bybit)가 북한 해킹 조직의 공격을 받아 15억달러(약 2조1000억원) 규모의 고객 자산을 탈취당했다. 단일 가상자산 해킹 사건 중 역대 최대 규모로 '역사상 피해액이 가장 큰 강도 사건'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업계는 범행의 배후에 북한 해킹 조직 '라자루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해킹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에도 직접적인 충격을 줬다. 사건이 발생하자 비트코인 가격이 10만달러대에서 순식간에 8만달러대로 급락하며 시장이 출렁였다.
국내 역시 가상자산 해킹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위메이드의 가상자산 프로젝트 위믹스(WEMIX)가 지난달 28일 대규모 해킹을 당했다. 위믹스재단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가상자산 교환 서비스 '플레이 브릿지 볼트'가 악의적인 외부 공격을 받아 위믹스 코인 865만4860개가 비정상 출금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시세인 1020원으로 계산하면 약 88억원어치다. 탈취된 위믹스는 쿠코인(KuCoin), 비트마트(BitMart), 바이비트(Bybit), 비트겟(Bitget), HTX, 비트투미(Bit2Me), MEXC 등 글로벌 거래소 7곳으로 분산 입금됐다. 대부분의 탈취된 코인은 거래소에서 이미 매도된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 커지고 수법 정교해져= 최근 해킹 사건들은 피해 규모가 커지는 것은 물론 수법도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개인 투자자의 지갑을 노리는 공격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대형 거래소의 보안망을 뚫거나 블록체인 네트워크 자체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북한이 있다. 북한 해커들은 지난해 13억4000만달러(약 1조9000억원)를 해킹으로 탈취해 전 세계 가상자산 해킹 피해액의 61%를 차지했다. 이는 2022년 11억달러를 뛰어넘고 2023년 6억6050만달러의 2배가 넘는다.
북한이 가상자산 해킹을 주요 외화 조달 수단으로 삼는 이유는 경제 제재로 인해 합법적인 금융 거래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해외 노동자 파견, 무기 거래, 석탄·광물 밀수 등을 통해 외화를 확보했지만 국제 제재가 강화되면서 해킹이 가장 효과적인 자금 확보 수단이 된 것이다. 특히 가상자산은 익명성이 보장되고 국경을 초월한 이동이 가능해 북한 정권이 자금 세탁을 통해 제재를 우회하기 쉽다는 점도 해킹에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다. 세스 베일리 미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는 "가상자산 탈취는 북한의 새로운 외화 조달 수단"이라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개발 자금의 40% 이상이 가상자산 해킹을 통해 조달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글로벌 공조로 해킹 자금 동결해야"= 해킹 위협이 심각해지면서 각국 정부와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보안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대책은 거래소의 가상자산을 '콜드월렛'에 보관하는 것이다. 가상자산 지갑(월렛)은 인터넷이 연결된 '핫월렛'과 오프라인에서 보관되는 '콜드월렛'으로 나뉜다. 핫월렛은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해커들의 공격을 받을 위험이 높다. 반면 콜드월렛은 인터넷과 단절된 상태로 보관돼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국내 거래소들이 고객의 가상자산 중 최소 80%를 콜드월렛에 보관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거래소들이 실시간 거래를 위해 일정량의 가상자산을 핫월렛에 보관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여전히 있다. 북한 해커들은 거래소 직원에게 악성코드를 감염시키거나 피싱 공격을 통해 관리자 권한을 탈취해 핫월렛에서 자금을 빼내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2019년 북한 해커들이 국내 거래소 업비트의 핫월렛에서 580억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탈취한 사례가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보안 강화만으로는 정교한 해킹을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콜드월렛 보관 비율을 늘리고 다중 서명 지갑(Multi-Signature Wallet) 도입을 확대하는 등의 보안 조치가 필수지만 이는 개별 거래소 차원의 대응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암호화폐 전문가인 제인 아완 드로세라 파운데이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북한의 암호화폐 해킹은 단지 금융 범죄가 아니라 핵확산과 인권침해 글로벌 불안정성을 조장할 수 있는 만큼 제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진정한 해결책은 더 강한 안보 요소와 인프라 수준에서의 규제, 내부 협력을 통한 디지털 금융의 근본을 안전하게 다지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가상자산은 국경이 없다"면서 "예를 들어 한국과 태국이 거래를 하면 해킹도 그 경로를 따라 이뤄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보안을 강화해도 상대국의 보안이 취약하면 해킹을 막기 어렵다. 각국 정부가 가상자산 해킹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킹 자금을 거래소에서 동결할 수 있는 글로벌 협력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진아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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