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세종본부 과학바이오팀 부장
![[현장칼럼] 트럼프에 맞설 `과학외교` 필요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503/2025030602102369731001[1].jpg "[현장칼럼] 트럼프에 맞설 `과학외교` 필요하다")
관세 부과 나라뿐 아니라 품목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철강, 알루미늄 제품부터 자동차, 반도체, 목재까지 미국 우선주의에 조금이라도 필요한 것이라면 여지 없이 관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과녘에 비켜 있지만 언제든 과녘 안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로 여겨진다.
관세 부과를 받은 나라들은 상호 관세로 미국에 맞짱 떠보려고 하지만 추가 보복을 염려해 셈법이 복잡하기만 하다. 관세를 앞세운 트럼프식 무역통상 압박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첨단 전략기술 분야에서 턱 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해외의 우수한 과학자와 연구자를 미국으로 끌어 들이는 '제2의 페이퍼 클립' 작전도 나올 법 하다.
페이퍼 클립 작전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과학자와 엔지니어, 기술자 등을 비밀리에 데려와 연구개발을 진행한 것으로, 미국은 이를 통해 나치의 우수한 기술을 확보하고, 소련과의 과학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 중 독일 과학자로 미국에 온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는 미국 NASA의 아폴로 계획에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새턴Ⅴ' 로켓을 개발해 달 착륙의 토대를 놓았고, 미국이 냉전시대에 군비·우주경쟁에서 소련을 앞서갈 수 있었다.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신고립주의자로 평가받는 트럼프가 미국과 기술협력을 원한다면 자국의 우수 인재를 미국으로 오도록 하는 '과학인재 리쇼어링' 카드를 언제든 꺼낼 수도 있다. 미국 영주권을 70억원에 팔겠다고 전 세계를 상대로 세일즈에 나선 트럼프가 아니던가.
이런 점에서 과학기술 최강국인 미국과의 협력은 미래산업 육성과 기술 주권 확보 차원에서 한국의 미래 지속가능한 성장과 국가 명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2개월이 다 돼 가도록 우리의 과학외교는 실종된 듯 하다.
지금껏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과학계 인사와 공식적 만남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속된 말로, 명함 조차 내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형국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탄핵정국 속에서 그들이 우리와의 공식 만남을 꺼려하는 점도 없지 않지만, 트럼프 측근들과 줄을 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른 나라와는 상반된 행보다. 잠시나마 과학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외교부는 본업에 바빠서 그런지 미국과의 과학기술 협력에는 손을 뻗지 못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와의 협업 움직임도 없다. 사실상 미국을 상대로 한 'K-과학외교'는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과기정통부가 지난달 미국을 방문해 미국과학한림원, 미국과학진흥협회 등 트럼프 정부에 자문 역할을 하는 과학계 인사와 만났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다. 우주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 미국과의 우주 협력도 답보상태다. 지난달 24일 국가우주위원회 사전 브리핑에서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트럼프 정부와의 우주협력에 대해 "NASA 국장도 바뀌는 상황이고, 여러 변화가 예견되고 있어 미국과 긴밀한 공조를 위해 접촉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해외에서 열리는 회의나 개인적 만남을 통해 긴밀한 공조를 계속 구축할 계획"이라고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소통 계획은 제시하지 못했다.
트럼프 성격상 한미 동맹만 팔아선 결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트럼프 정부는 R&D 예산을 줄이고,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 삭감과 인력을 감축하기로 해 미국 과학계도 뒤숭숭하다. 우리 과학계가 가진 것, 미국 과학계가 가지지 못한 것을 전략적 협상카드로 제시해야 그들이 우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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