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공세로 경기 위축 가능성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할 것이라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불확실성 확대로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위축될 개연성이 높아진 만큼, 정부 차원의 일관된 경제정책으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1월 국내 50인 이상 기업 508곳(응답기업 기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96.9%가 '올해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답했다고 6일 밝혔다. 이날 대한상회회의소가 발표한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 보고서도 경기에 대한 비관적이고 불투명한 전망이 많았다. 대한상의의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으로 최근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 60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총 조사 응답 기업 중 22.8%는 올해 경제위기가 IMF 외환위기보다 심각할 것으로 봤고, 그 외 74.1%는 '1997년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위기가 올 것'이라고 답했다. 최근 국내 정치 불안이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복수 응답)으로는 '환율 변동성 확대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47.2%) 응답률이 가장 높았고 '소비 심리 위축·내수 부진 심화'(37.8%), '불확실성 확대로 투자 심리 위축'(26%) 순이었다.
기업들은 올해 가장 심각한 애로사항·규제에 대해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에 따른 임금 부담'(38.4%)이라고 응답했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등 안전 규제'(28.3%), '주 52시간제 등 근로 시간 규제'(22.8%) 등에 대한 답변도 많았다.
올해 기업 규제 환경에 대해서는 34.5%가 작년보다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비슷할 것'은 57.4%, '개선될 것'은 8.1%로 각각 집계됐다. 규제환경 악화를 전망한 기업들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부과 등 글로벌 무역규제 강화'(45.7%·복수 응답)를 가장 많이 꼽았다.
대한상의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2월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10년 전인 2014년 12월 107.76 대비 3.4배 증가한 365.14를 기록했다.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의 10포인트 증가는 국내 설비투자를 약 6개월 뒤 8.7%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60개월 내 최대 상승한 것으로 올 상반기 설비투자가 크게 감소하고, 불확실성 해소 전까지 기업의 투자 위축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 1월 설비투자는 작년 12월 대비 14.2% 감소해 이런 현상이 현실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SGI는 정부·기업 차원의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일관된 경제정책으로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경제정책 변경 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전 예고하는 등 기업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는 잠재력 있는 기업과의 인수합병(M&A)을 통해 해외에 진출해 투자에 따른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양수 SGI 원장은 "반도체, 자동차 등의 업종은 경제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단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면서 "국가전체의 투자변동성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반도체특별법 등을 조속히 통과시켜 기업들의 장기 안정적인 투자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