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AI G3 도약 위한 마지막 기회… "규제보다 진흥이 먼저"

입력: 2025-03-03 19:14 이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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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4개월만에 소속 연구팀 공중분해
생소하던 반도체 연구 맡으며 심기일전
독학으로 AI전문성 확보하며 승승장구
대기업의 데이터과학자 경력 뒤로 하고
정부출연硏서 AI연구시스템 구축 도전
공모전 수상·MVP 선정 등 개발자로 두각
딥시크 이후 AI패권경쟁서 韓위상 추락
특화모델·소버린AI '투 트랙 전략' 필요
정부 과감한 투자·지원속 빠른 추격 시급

"중국발 '딥시크 쇼크'를 계기로 좋은 의미에서 우리가 AI G3(3대 강국)으로 도약할 마지막 기회의 창이 열렸다. 이 기회를 실기(失期)해선 더 이상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가 AI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남지 않았다."

AI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이제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AI·계산과학실장의 말에는 위기감과 비장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마치 목숨을 걸고 오징어게임에 임하는 참가자들처럼 결연함 마저 느껴졌다. AI 전문가의 눈에는 우리에게 닥친 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 박사는 "챗GPT, 딥시크 이후 글로벌 AI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존재감이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면서 "앞으로 가속화될 AI시대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전략과 성장 모델로 AI 선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을 지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런 위기 속에서 국가 차원의 대형언어모델(LLM) 구축 못지 않게 산업별 특화된 AI 모델과 소버린(주권) AI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시작된 AI 선점을 위한 달리기에서 AI 진흥에 초점을 맞춰 전력질주해야 한다"면서 "현장의 AI 인재에 대한 대우와 보상을 높이고, 한글 데이터 확보에 대한 접근성을 보다 완화해 주는 정부 차원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AI는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인간은 AI가 못하는 것을 찾아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맺으면서 공진화하기 위한 전략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담=이준기 과학바이오팀 부장

◇입사하자 마자 연구팀 해체… 자존감 잃고, 반도체 연구로 '심기일전'

이 박사의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친구들과 로봇을 가지고 놀기 좋아했고, 중학생이 되어선 수업이 끝나면 과학실로 달려가 각종 실험을 통해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마음껏 발산했다. 자연스럽게 과학고에 진학했고, 대학에선 재료공학을 전공한 뒤, 자성재료로 박사학위를 받아 어릴 적 과학자의 꿈에 다가갔다.

교수로서 연구자 길에 들어서고 싶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국내 최고의 대기업 연구소에 입사해 영구자석 분야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입사 4개월만에 몸담았던 연구팀의 갑작스런 해체로 생소한 반도체연구소로 재배치됐다.

그는 "함께 연구하던 동료 연구자의 절반이 회사 경영방침에 따라 의도하지 않게 뿔뿔히 흩어지게 돼 연구자로서 자존감을 잃게 돼 힘든 시간이었다"며 "반도체연구소로 옮겨와 이전에 관심 갖고 공부했던 3D 시각화와 모델링 연구를 반도체 설계와 공정을 개발하는 시스템 기술팀과 협업하며 역량을 발휘해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AI와 깊어지는 접점… 시간 쪼개 독학으로 전문성 확보

이 박사는 3D 시각화와 모델링을 통해 반도체 설계 불량을 잡아내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서 연구자로서 한층 자신감을 갖게 됐다. 때마침 바둑 AI '알파고 쇼크'와 함께 회사 조직개편으로 짧은 경력에도 팀 리더를 맡아 AI에 보다 전문적으로 접하게 됐다. 아울러, AI 분야에서 내노라할 정도의 우수한 엔지니어들과 호흡을 맞추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는 "이전까지 AI 실력이라곤 파이선으로 코딩할 수준에 불과해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면서 "팀원들과 일을 하려면 그들에 못지 않은 전문가 수준의 AI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팀원들과 숱한 회의와 토론을 통해 AI에 대해 하나씩 알아갔고, 부족한 부분은 시간을 쪼개 유튜브 강의 등을 통해 채워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AI에 있어 데이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득하게 됐다. 특히 어떤 데이터를 누가, 어떻게 모아서 어디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 전반을 다루는 방법론과 실무 역량을 배우고 경험한 것이 지금의 데이터 과학자로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커다란 자산이 됐다.

이 박사는 "제대로 된 데이터 수집, 분석, 활용 등은 조직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며 "조직의 인공지능 전환(AX)은 단순히 AI기술 도입에 그치지 않고, 조직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와 시스템을 동시에 바꿔 나가야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AI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인정받아 회사 최고상을 연거푸 받게 됐다.

◇대기업 연구자에서 출연연 연구자로 '변신'… 에너지연구에 AI 접목 시도

그는 반도체·AI분야의 프로젝트를 데이터 기반의 혁신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부서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능력보다는 훌륭한 부서원과 상사들이 프로젝트 성공에 더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 박사는 "회사에서 인정을 받을수록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동료들이 잘 해 준 덕분에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괴리감이 컸다"며 "실무 경험이 없는 제가 관리자로 오래 있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그리고 개인에게도 마이너스라는 생각에 실무 경험을 긴 호흡을 갖고 보다 탄탄히 경험하고 쌓고자 이직을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정부출연연구기관이었다. 대기업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쌓은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출연연에서 데이터 기반 AI 활용 연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고 문을 두드렸고, 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출연연에 와 보니 AI라는 이름이 붙은 연구과제가 많았지만 연구를 위한 데이터 수집, 유통, 활용 체계 구축이 쉽지 않았고, 처음 접해본 에너지 분야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AI를 에너지 연구에 접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럴수록 그는 1300일 넘게 매일 매일 코딩에 몰두하며 부족한 역량을 채워가며 에너지 AI 연구 혁신에 더욱 전념했다.

그의 노력이 통한걸까. 연구와 업무 효율화를 위해 개발한 정보 수집·분석 자동화 프로그램을 좋게 평가한 경영진의 지원을 받아 원내 AI 개발자로 본격 나섰다. 마음 맞는 연구자들과 의기투합해 연구원 내 AI 학습조직을 만들고, AI를 연구·업무에 접목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해 갔다. 그 결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주최 '디지털전환 공모전'에 참가해 2회 연속 수상했고, 마이크로소프트 AI 분야에 '2년 연속 MVP'로 선정되는 성과도 냈다.

◇딥시크, 놀라운 기술발전 속도… "우리에겐 마지막 기회"

AI 개발자로 역량을 키워가고 있는 이 박사는 챗GPT에 이어 중국의 딥시크 이후 치열해지고 있는 AI패권경쟁 시대에 우리나라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안타까워했다. 세계경제 10위 국가이자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이 생성형 AI로 촉발된 AI 시대에서 아주 작은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중국 딥시크의 저비용·고효율 AI 모델인 'R1' 공개 이후 AI분야에서 한국은 더 한층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이 박사는 "딥시크는 중국의 AI 기술력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로, 1년 전 (그들이 발표한) 논문과 비교하면 엄청난 속도로 기술 발전이 이뤘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며 "오픈소스로 공개한 것도 그만큼 자신의 AI기술에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향후 성능이 얼마나 더 빠르게 발전해 우리 앞에 나타날 지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딥시크가 우리에게 던져준 숙제에 대해 곱씹어 봐야 한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고도 성장을 이끌어 온 한국판 경제성장 모델이 더 이상 AI시대에는 유효기간이 지나 수명을 다했다고 이 박사는 진단했다. 그는 "과거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른바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하는 우리의 경제성장 모델을 통해 급변하는 AI시대에서 과연 우리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며 반문한 뒤 "AI 오픈소스 생태계의 판을 크게 흔들어 놓은 딥시크를 계기로 우리가 글로벌 AI 3대 강국을 위해 심기일전해 민관이 힘을 합쳐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좋은 의미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고, 이를 실기해선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별 특화된 AI모델로 '승부수'… "AI 진흥에 주력할 때"

그는 AI가 우리나라의 미래 지속가능한 성장을 좌우하는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를 위해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특화된 AI 모델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소버린(주권) AI'를 구축해 경제, 안보, 국방, 산업,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의 '백본(back-bone) AI'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이 박사의 주장이다.

그는 "각 산업에 특화된 AI를 만들어 오픈소스 기반의 LLM 플랫폼에 붙여 산업별 AI 에이전트로 활용하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AI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소버린 AI도 놓쳐선 안 되기에 에너지·식량 안보와 같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1만8000장의 GPU를 확보해 국가AI컴퓨팅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이런 점에서 시의적절하고, 의미있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AI를 둘러싼 진흥과 규제 논쟁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 박사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우리 입장에선 "진흥이 먼저"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AI 선점을 위해 전 세계가 달리기를 시작한 상황이기에 우리는 진흥을 통해 미국과 중국을 빠르게 따라가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 중심의 AI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간 격차가 더 벌어져 아예 따라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다만 AI 진흥과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을 놓아선 안 된다고 했다.

이 박사는 "AI는 앞으로 인간 지능을 능가할 정도로 계속 발전할 것이고, 우리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인간은 깊은 사색과 협업을 통해 AI가 하지 못하는 것을 통해 보다 주체적인 기획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인력양성·데이터 수집, 정부의 과감한 지원 필요

이 박사는 AI 인력양성과 데이터 수집에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AI 인재양성을 위해 모든 부처가 제각각 이벤트성 대회를 열거나, 취업준비생 대상으로 AI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현장과 괴리감 있는 정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나비들이 모이게 하려면 꽃밭을 잘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AI 우수 인재를 끌어 모으려면 이들에 대한 대우와 처우 향상, 도전을 복돋우고, 설령 실패해도 용인하는 환경과 여건이 먼저 만들어 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AI에 전혀 지식이 없는 취업준비생과 재취업자 등을 대상으로 AI 인력을 키우겠다고 하는데, 그런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능력이 있는 AI 인재들이 성과를 내면 그에 합당하는 보상과 대우를 해 주고, 그걸 후배들이 보고 배우며 성장할 때 우수한 AI 인재는 길러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품질이 좋지 않고, 확보하기 쉽지 않은 한글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정부 차원에서 완화해 줘야 한다고 짚었다.

이 박사는 "AI 개발자들은 한글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고, 품질이 좋지 않아 농담 삼아 '전자책이라도 다 갖다 쓰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멀티모달로 넘어가면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 음성, 영상 등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데, 정부가 나서서 데이터를 잘 모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이준기기자 bongchu@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