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기술은 인공지능(AI)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미국, 중국, EU(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추진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 2023년 6월 '대한민국 양자과학기술 전략'을 내놨고, 같은 해 10월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제도적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정부는 2035년까지 양자기술 분야의 종사 인력을 현재 1000명에서 1만명으로, 핵심 인력을 384명에서 250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2031년까지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2027년까지 50큐비트 양자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의 양자기술을 냉정히 평가하면 주요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내놓은 '글로벌 R&D(연구개발) 전략지도'를 살펴보면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양자센서로 나뉘는 양자 기술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 중국, 독일, 호주, 이탈리아 등 다른 국가와 비교해 모든 분야에서 최하위인 12위를 기록했다. 특히 양자컴퓨터 부문에서는 기술수준 점수가 가장 높은 미국을 기준(100점)으로 표준점수를 내면 한국은 2.3점에 그쳤다.
그러나 이제 양자 분야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벗을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
7일 인천 연수구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양자융합연구센터 선클플라자에서 열린 '연세퀀텀컴플렉스' 봉헌식(개소식)에서 허동수 연세대학교 이사장(왼쪽 여덟번째), 윤동섭 총장(왼쪽 일곱번째) 등 참석자들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연합뉴스
IBM의 127큐비트 상용 양자컴퓨터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한 연세대학교는 7일 '퀀텀(양자) 콤플렉스'를 정식으로 열고 양자과학기술의 확산과 성장, 양자 생태계 발전 등을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연세퀀텀컴플렉스는 최첨단 연구시설과 산학협력 공간을 갖춘 양자과학 연구 거점으로 활용된다.
연세대는 지난해 11월 국내 최초, 세계에서 5번째로 양자컴퓨터 'IBM 퀀텀 시스템 원'을 도입하고, 세계 최초의 양자·바이오 융합 첨단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IBM 퀀텀 시스템 원은 127 큐비트 IBM 퀀텀 이글 프로세서로 구동되며 연세대 네트워크의 연구자, 학생, 조직 및 파트너들만이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용성 단계의 컴퓨팅 자원을 제공한다. IBM이 최근 공개한 최고 사양의 퀀텀 헤론을 제외하면 상용화 단계에서는 가장 우수한 성능의 양자컴퓨터다.
연세대는 이날 인천 연수구 연세대 송도캠퍼스에서 '퀀텀 콤플렉스 봉헌식(개소식)'을 갖고, 글로벌 양자기술 혁신을 이끌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윤동섭 연세대 총장은 "연세대학교는 양자 기술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바꿀 준비가 돼 있다. 연세대는 IBM과 협력해 세계적 수준의 양자 컴퓨터를 도입했고 초학제적 연구를 통해 양자 기술이 산업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선도적으로 탐구할 것"이라며 "양자 기술을 활용해 신약 개발, 질병 조기 진단, 친환경 에너지 연구 등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윤동섭 연세대학교 총장이 7일 인천 연수구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양자융합연구센터 선클플라자에서 열린 '연세퀀텀컴플렉스' 봉헌식(개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봉헌식에는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윤오준 국가정보원 3차장, 황판식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 등 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양자 기술의 국가적 관심을 나타냈다. 박 차관은 "신약 개발, 물류 최적화 등 분야서 '양자 이득'이란 게 입증되면서 양자 기술은 산업계의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됐다"며 "2023년 양자법이 제정되면서 양자기술 및 산업육성을 위한 기본 틀이 마련됐다. 과기정통부는 양자컴퓨터 개발을 주도한다면, 산자부는 이를 바탕으로 한 산업 적용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세대 퀀텀 콤플렉스를 기반으로 산업 적용 알고리즘 개발, 제약 유스 케이스 발굴 등을 지원하는 한편 이를 화학, 물류 등에도 적용할 예정"이라며 "다양한 실증 프로젝트 추진해서 산업 전반에 기술이 적용되도록 기반을 조성할 것"이라고 했다.
황 실장은 "퀀텀 콤플렉스는 단순히 연구동이 아니라 산학연 협력 구심점"이라며 "정부도 양자 이니셔티브를 통해 양자 컴퓨터 개발, 양자암호통신 상용화, 양자센서 핵심기술 확보 등을 목표로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윤 3차장은 양자통신 기술에 주목해 연세대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그는 "기관은 양자컴을 이용해 암호 해독과 PQC 개발을 동시 추진하고 있다. 산업계 핵심기술 누출 차단을 통해 과학 기술·국익 보호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정재호 교수는"연세대는 자체 양자컴퓨팅 서비스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국내 독자적인 양자컴퓨팅 운영·서비스 및 활용 역량을 확보해 양자컴퓨팅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라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캐나다 워털루대학,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과 양자정보과학기술 활용 연구개발 협력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해 선도적인 연구 프로젝트 기반의 공동 연구 및 정보 교환, 인력 교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올해 과기정통부, 산업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 주도 양자과학 국가과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이 감베타 IBM 퀀텀 수석 연구원 겸 부사장도 이날 봉헌식에 참석해 "연세대는 양자 발전 노력의 최전선에 있으며 국내 최초로 IBM의 전용 양자 시스템을 캠퍼스에 도입한 기관이 됐다"며 "IBM과의 파트너십은 한국의 양자 연구를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용한 양자컴퓨팅 기술을 실현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평했다. 감베타 부사장은 이어 "한국은 '양자 전략'과 같은 야심 찬 국가 정책을 통해 글로벌 양자 커뮤니티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며 "IBM은 연세대 퀀텀 프로그램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의 양자 생태계 발전에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니셔티브가 되는 것은 물론, 글로벌 협력 모델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7일 인천 연수구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양자융합연구센터 선클플라자에서 열린 '연세퀀텀컴플렉스' 봉헌식(개소식)을 마친 허동수 연세대학교 이사장, 윤동섭 총장, 제이 감베타 IBM 퀀텀 부회장 등 참석자들이 'IBM 퀀텀시스템 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연세대는 올해 창립 140주년과 '세계 양자 과학기술의 해'를 맞아 지난 4일부터 오는 8일까지 '연세퀀텀위크 2025'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4~5일 국제캠퍼스에서 '인더스트리 세션'을 열고 IBM, D-웨이브, 파스칼 등 글로벌 양자컴퓨터 기업들의 활용 사례를 발표하고, 양자기술이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6~7일동안 진행되는 국제콘퍼런스에서는 세계 양자과학 석학들이 최신 연구 성과와 전망을 공유했다. 6일에는 영국과 한국이 공동 주관하는 '퀀텀 헬스' 콘퍼런스가 열려, 양자기술이 보건의료 분야에 가져올 변화를 모색했고, 7일에는 양자과학 분야 주요 석학들이 참여하는 학술회의가 열려, 국내외 연구자 간 네트워크 강화와 학문적 교류의 장을 가졌다.
8일에는 국제캠퍼스에서 인천 지역 고교생을 위한 '양자컴퓨팅 아카데미'와 시민을 위한 '양자컴퓨팅 공개강연'이 열린다.
신촌캠퍼스에서는 4일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의 오프닝 강연을 시작으로, 연세대 양자정보과학 교수진이 참여하는 특강이 7일까지 이어졌다. 레고 정품 브릭으로 양자컴퓨팅 원리를 구현해보는 'Y-LegoQ' 프로그램도 3월 7일부터 6월 20일까지 운영된다.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7일 인천 연수구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에서 제이 감베타 IBM 부사장이 '양자 우위로 가는 길'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김미경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