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차에 대해 고관세를 부과할 시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위협받을 전망이다. 특히 한국GM, 르노코리아 등 중견 완성차 업체들의 국내 공장 경쟁력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부품사 등 연계 산업의 동반 침체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 수요에 한계가 있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특성상 최대 해외 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출도 줄어들면 국내 산업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우려다.
10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2024년 세계 자동차 생산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이 전년 대비 2만7000대가량 줄면서 총 412만8000대로 7위로 하락했다. 수출대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고금리·고물가 장가화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가 2013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내며 생산 감소를 초래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장벽으로 인해 최대 해외 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출이 줄어듦에 따라 생산량 추가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전쟁을 선포하며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등으로 자동차 시장의 절반이 수입차로 판매되는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고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관세 정책을 내건 것이다.
관세가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트럼프 집권기 동안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 현지 생산에 대한 압박을 거세게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때도 관세 25% 카드를 만지작하다가 현대자동차·기아가 미국 공장 설립을 약속하자 5% 수준으로 낮춘 전력이 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엄포를 하는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기에 완성차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미국 내 생산시설 확충과 공장 설립을 약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 현지 생산이 늘어나게 되면 국내 공장의 생산량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KAMA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 143만2713대가 미국으로 향했다.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412만8242대)의 34.7%가 미국으로 수출된 것이다. 이 분량이 줄어든다면 단기적으로 국내 공장의 가동률은 줄어들게 되고 산업 전반적인 침체가 우려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GM과 르노코리아는 국내 공장의 경쟁력을 잃을 위기다. 한국GM은 국내 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의 미국 수출 비중이 85%에 달한다. 이에 위기를 느낀 한국GM는 오는 15~22일 미국 GM 본사와 현지 공장 등을 방문해 GM의 글로벌 전략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르노코리아의 경우 앞서 부산공장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폴스타 4'를 생산하기로 했다. 부산공장에서 생산된 폴스타 3는 전량 북미로 수출된다.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르노코리아는 부산공장을 활용할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부품사들도 동반 타격이 우려된다. 한국GM의 1차 협력사는 276곳이며 2·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2700~3000곳까지 늘어난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이 위치한 부산에도 자동차 관련 기업은 연 매출액 25억원 기준 190여곳에 달한다. 완성차 공장이 가동률을 낮추거나, 생산을 중단할 시 이들 부품 협력사들은 매출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관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지만 해외 공장 설립 등 바로 대응할 수 있는 게 없는 중소 부품사들은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부품 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생산이 위축되면 부품산업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고용이나 투자를 줄이지는 않겠지만 완전 배제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해외 공장 설립도 여력이 되는 업체들의 이야기이며, 국내 산업에 의지하고 있는 중소업체들은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완성차뿐 아니라 부품 협력사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