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이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퍼센트 관세 부과를 강행하고, 나토(NATO) 동맹국들에 방위비 부담 증액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유럽은 미국이 필수적으로 의존하는 품목을 지렛대로 삼아 반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21년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전략적 의존과 역량'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EU로부터 항생제, 심장박동 조절기, 고품질 철강 등 260여 개의 핵심 품목을 수입하고 있다. 한 유럽 외교관은 "방사성의약품은 독일에서 생산되고, 반도체 산업을 지탱하는 기계류도 유럽이 공급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고품질 강철은 독일산이며, 항생제 역시 이탈리아에서 제조된다"며 "유럽은 결코 약한 위치에 있지 않다. 미국의 의존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U는 초기에는 미국을 달래려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산 무기 구매를 확대하고 방위비 지출을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자 필수의약품 수출 제한이라는 강수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필수의약품을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인도적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EU는 그동안 대러시아 제재에서도 필수의약품을 제외해 왔으며, 보건과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조치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수출 제한을 하지 않더라도, EU가 그러한 선택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트럼프 행정부에 강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 간의 무역전쟁이 점점 더 격화되는 가운데, 필수의약품이라는 새로운 협상 카드가 국제 외교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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