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이동통신사들에 수조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예고와 달리 훨씬 적은 1140억원에 그치는 과징금을 부과하자, 공정위 내부에서도 이번 과징금 부과의 정당성을 두고 해석이 달라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과징금 액수를 대폭 줄이면서도 부과 사실 자체를 고수한 것은 '칼을 뺀 이상 뭐라도 잘라야 한다'는 기관 입장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공정위는 과징금 액수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번호이동 가입자로부터 발생한 매출액의 1%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동통신 3사가 2015년 11월~2022년 9월 번호이동 순증감 건수가 특정 사업자에게 편중되지 않도록 상호 조정하기로 합의하고, 담합한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140억원을 부과했다고 12일 밝혔다.
당초 업계에서는 최대 5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실제 발표된 과징금 액수는 총 1140억원으로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이로 인해 실제 공정위가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가운데 통신 3사는 과징금 규모와 상관없이 담합 행위로 판단되는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과거 통신 3사는 단통법 준수를 위한 자율규제 일환으로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와 함께 시장상황반을 운영했다. 이동통신 3사는 각 사의 번호이동 상황, 판매장려금 수준 등에 대한 정보 공유를 하며 2015년 11월 각사 간 번호이동 가입자 순증가 또는 순감소 건수가 특정 사업자에게 편중되지 않도록 조정하자고 합의했다. 공정위는 이를 7년여간의 담합 행위로 판단했다.
다만, 이번 과징금 부과 결정의 배경으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위반 예방과 방통위의 행정지도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방통위와 이견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공정위는 그간 방통위와 7차례 실무협의를 했고, 전원회의에서도 방통위가 의견을 개진한 부분을 최종 결정에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문채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1140억원이라는 과징금이 적은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과징금 고시에 따라서 위법행위 발생 경위, 경쟁제한 효과, 관련 시장 상황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했다. 통신 3사간 합의가 단통법 위반을 예방하기 위한 자율규제 과정에서 진행됐고 방통위의 행정지도도 어느 정도 관여된 점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한편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정위 제재에 우려를 표해 왔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취했던 통신사들의 행위가 과도하게 단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 또한 지난달 대국민 보고 브리핑에서 "민간 분야에 대한 정부 부처의 과한 것(조치)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전반적인 배경이 있는 만큼 공정위가 당초 기세대로 과징금을 부과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0.5%~20% 수준으로 부과할 수 있는데, 이번 건은 1%로 결정됐다. 공정위 측은 "2022년 토종닭 신선육 담합 사건, 2019년 종계 담합 사건 등에서도 1%를 적용한 적이 있고 그보다 낮은 수준을 적용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과징금 규모가 예상치보다 낮아졌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방통위의 법 집행에 근거해 정보 공유를 한 것이 담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가 제시한 담합 결과에 해당하는 가입자 유치경쟁 제한 효과를 보면, 통신 3사의 하루 평균 번호이동 순증감 건수는 2014년 3000여 건에 달했지만, 2016년에는 200건 이내로 감소했다. 일평균 번호이동 총 건수는 2014년 2만8872건에서 2016년 1만5664건으로 45.7% 줄었고, 2022년에는 7210건으로 더 줄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번호이동 감소가 담합의 결과가 아니라 단통법 시행 이후 시장 안정화의 효과라고 반박했다. 부처간 규제 권한 충돌 우려도 피하기 어렵다. 이번 결정에 앞서 공정위는 해운사들의 운임과 항로 조정에 관해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법원에서 해양수산부의 규제 권한을 우선하는 판결을 내렸다. 통신 3사의 행정 소송 예고로 인해 이번 제재의 최종 결과 또한 법원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징금이 얼마가 부과됐든 단통법을 준수한 업계의 입장에서 담합이라는 단어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김나인·김영욱기자 silkni@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