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국가들이 '반도체 생산 능력 강화'를 내걸며 '반도체 연합(Semicon Coalition)'을 결성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후 최근 경색된 유럽-미국 간 분위기가 연합 결성과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연합이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ASML의 첨단 노광장비가 중국으로 반입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 9개 국가는 최근 이 같은 취지로 반도체 연합을 결성했다. 유럽 반도체 연합 회원국은 네덜란드 주도로 벨기에,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핀란드, 폴란드로 구성됐다. 이들은 지난 12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내고 "유럽 반도체 입지를 강화하는 것은 경제뿐 아니라 번영과 안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 반도체 연합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는 네덜란드가 세계 최대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 ASML을 보유한 국가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ASML은 반도체 장비 시장 '슈퍼을'로 불린다. ASML의 장비 없이는 초미세 공정 반도체 제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ASML은 미 정부의 압박으로 지난 2022년 10월 이후 중국에 최신 노광장비를 팔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언론 아이오플러스는 "유럽 반도체 연합 결성으로 네덜란드는 더이상 ASML 장비 수출 문제를 미국과 논의하는 데 있어 혼자가 아니게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서는 이번 연합 결성으로, ASML이 중국 반도체 제재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EU가 이미 지난 2023년 'EU 반도체법'을 통해 조직을 꾸린 상황에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별도 조직이 새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한 유럽 반도체 연합은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것과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다. 기존 조직은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10% 수준인 유럽의 글로벌 반도체 제조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ASML은 그간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향 반도체 수출 제재에 동참해왔으나, 이번 연합 결성으로 미국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런 행보로 중국에 ASML의 최신 노광장비가 유입되면, 이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순원기자 ssun@dt.co.kr
네덜란드 펠트호번에서 차세대 노광장비인 '하이 NA EUV''가 조립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