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을 예상하고 미리 기업회생 신청을 준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온 가운데, 이사회 의결 전에 기업회생 신청을 위한 실무적 작업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그간 홈플러스는 채권시장 단기물 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하락한 것을 통보 받은 이후 기업회생 신청을 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홈플러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1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난 4일 신청·개시된 홈플러스 기업회생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기업회생 신청을 결정한 것은 이사회가 열린 3월 3일"이라며 "신용등급 하락이 확정된 2월 28, 3월 1일은 내부 검토를 했다. 그 때부터 서류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후 본격적인 기업회생 신청 준비는 지난 1일 오후부터 이뤄졌다는게 김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2월 28부터 3월 2일까지는 회생 없이 회사가 부도를 피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봤고, 3월 1일 오후 임원들끼리는 더 이상 방법이 없겠다고 판단해서 그때부터 준비를 본격적으로 했다"고 답했다.
이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럼 그 이전에도 기업회생 절차를 미리 준비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며 "1일부터 준비했다고 했는데, 3월 1일은 공휴일, 2일은 일요일, 3일은 법정 대체휴일로 다 쉬는 날이라 관공서 업무도 중단돼 있었다. 법원에 제출한 46개 서류 중 직접 관공서에 가서 떼야 하는 서류를 이 기간에 뗐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날짜에 미리 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김 부회장은 "제가 제출한 첨부서류는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른다"라며 "저희가 직접 뗀 서류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 결정 시점은 현재 피해 호소가 이어지고 있는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ABSTB)를 둘러싼 '불완전 판매', '사기판매' 의혹을 판명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단채는 일종의 기업어음으로, 증권사 입장에선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갈 조짐을 알고도 이를 소비자에게 팔았을 경우 불완전판매가 된다. 홈플러스 입장에선 재무상태가 안 좋은데도 이를 발행한 것 자체를 두고 '사기판매'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에 따르면 전단채 피해는 유동화 전단채 부분만 그 규모가 4000억원이 넘고 기업어음(CP) 등 다른 전단채까지 합하면 6000억원이 넘는다.
이와 관련,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홈플러스의 CP(기업어음), 단기사채, 유동화 증권의 발행·판매 과정에서 위법 소지가 발견될 경우 엄정 대응하겠다"면서 "CP, 단기사채, 유동화부채 판매규모는 약 5900억원으로, 이 중 개인이 2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가 일종의 '약탈적 M&A', '먹튀용 위장회생' 등과 같은 행태로 판명될 경우, 이에 대응할 관할 부처를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저희가 챙겨보겼다"며 의지를 밝혔다.
이날 현안질의에서는 MBK가 홈플러스 인수 이후 매각 대금 갚기에만 몰두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추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2015년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고용인원을 줄이고 알짜 자산을 매각해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홈플러스 직원수는 2015년 2만6400명이었는데 지난해 2만명으로 6500명 줄었고, 간접고용직원까지 하면 1만명이 줄었다"라며 "ING생명 매각 관련해서도 당시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 해놓고 6개월만에 임원의 56% 해고하고 평직원의 30% 감축했다"고 했다.
이어 "MBK가 인수한 BHC 역시 알짜 자산과 점포를 매각해서 치킨 값은 올리고, 이 과정에서 김병주 MBK회장은 대한민국에서 2번째로 돈 많은 사람이 됐다"라며 "노동자는 자르고 알짜 점포는 팔고, 치킨값은 올리면서 돈 번 게 MBK의 실체"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광일 MBK 부회장은 "그렇게까지 (고용인원이)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지 않다"라며 "ING생명은 조기 희망퇴직을 했었고, 이는 인수 전부터 준비 돼 있던 사안"이라고 답했다.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납품·입점업체 정산주기 관련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홈플러스 사태를 '제2의 티메프 사태'로 규정하며 "정산주기를 보면 이마트, 롯데마트는 20~30일인데, 홈플러스는 이보다 세 배 긴 45~60일"이라며 "작년 티메프 사태때 온라인 플랫폼 정산 주기와 를 조사하면서함께 오프라인도 같이 조사해 제도적 보완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김광일(왼쪽)·조주연 홈플러스 공동대표가 14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열린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