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35일만에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해제를 취소했다. 토허구역 해제 이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에서 신고가가 속출하고, 갭투자가 성행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급히 '불끄기'에 나선 모습이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른 상황에서, 과거 정권 교체 '역린'이었던 부동산 시장을 건드린 뒤 여론이 악화하자 '백기'를 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오 시장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계기관 브리핑에서 "지난달 12일 토지거래 허가구역 해제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지적을 단호히 받아들인다"며 "이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지난달 12일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등 국제교류복합지구 인근 아파트 291곳을 5년 만에 토허구역에서 해제했다. 토허구역 내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 상가, 토지 등을 거래하려면 관할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직접 거주나 운영 목적이 아니면 거래할 수 없다.
하지만 토허구역 해제 이후 해당 지역의 집값이 급등했다. '잠삼대청' 아파트 단지 291곳의 전용면적 84㎡형의 경우 해제 후 30일 평균 매매가격이 해제 전 1개월보다 평균 2.7% 상승했고, 전 평형 기준으로는 3.7% 상승했다.
강남3구 주택시장 내 외지인 진입비율이 지난해 7월 이후 처음으로 반등했고, 같은 기간 외지인 매수비율도 24.7%에서 62.4%로 급등했다. 지난 1월 35.2%이었던 갭투자자 비중도 2월 43.6%로 늘어났다.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는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 형성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자유거래를 침해하는 반시장적 프레임이 틀림 없다"며 "허가구역 지정으로 인해 주변 지역으로 수요가 밀리는 풍선효과 부작용도 있었다"며 지난달 토허구역을 해제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한 달여만에 이를 번복한 것에 대해 "2월 거래신고가 상당 부분 마감되는 시점인 3월부터 신고가가 급증하는 현상이 감지됐다"며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투기성 거래 증가 신호도 포착됐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단순히 집값 상승을 토허구역 재지정 이유로 꼽았지만, 이미 지난달 토허구역 해제 당시부터 집값 상승 경고가 이어졌던 만큼 일각에선 향후 대권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 시장은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등과 함께 여당의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됐다.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정부에 정권을 넘겨준 결정적인 이유로 집값 폭등이 꼽힌다. 이 상황에서 강남3구로부터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과 경기 과천 등 준(準) 강남 지역으로 집값 오름세가 확산하자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달여 만에 정책을 뒤집으며 일관성을 훼손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오면서 오 시장은 '사면초가'에 빠지게 됐다. 오 시장은 "부동산은 시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며 "주택시장의 불안 요인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정책적 대응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오세훈(왼쪽 두 번째) 서울시장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