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이 일본 완성차 브랜드 닛산과의 단일 수주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의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배터리 수주 경쟁에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일본 완성차 업체와의 첫 파트너십 체결이자 북미 생산 기반을 활용한 초대형 수주로 SK온의 글로벌 고객 다변화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SK온은 19일 닛산과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에 따라 SK온은 2028년부터 2033년까지 6년간 총 99.4GWh 규모의 배터리를 닛산에 공급한다. 이는 중형급 전기차 약 100만대에 탑재할 수 있는 물량이다. 계약 규모는 약 15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작년 10월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와 109GW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지만, 당시 환율 조건과 세부 계약 내용 등을 고려하면 국내 배터리 업체의 단일 수준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일 가능성이 크다.
SK온이 일본 완성차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전통적으로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미 지역에서의 안정적 공급역량과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SK온이 공급하는 배터리는 고성능 하이니켈 파우치셀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중시되는 미국 시장에서의 고에너지밀도의 하이니켈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SK온은 이번 수주 물량을 북미 지역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이 배터리는 닛산이 미시시피주 캔톤공장에서 생산 예정인 북미시장용 차세대 전기차 4종에 탑재된다. 닛산은 2028년부터 SUV 2종, 세단 2종 등 신규 전기차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번 계약은 SK온이 전략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북미 지역에서의 공급처 확대라는 점에서 성과로 평가된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공급망 재편 속에 한·일 양국의 공급망 연대가 형성되는 동시에 후발주자로 평가받던 SK온이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는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SK온은 미국 조지아주에 연산 22GWh 규모 자체 공장을 가동 중이다. 또 고객사와 합작법인 형태로 조지아주, 켄터키주, 테네시주 등지에 총 4개의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모두 완공돼 최대 생산치로 가동될 경우 SK온의 미국 내 배터리 생산 캐파는 180GWh 이상으로 늘어난다.
도요타, 혼다와 더불어 일본 3대 자동차 제조사인 닛산이 SK온과 손잡은 것은 북미의 현지 생산 체계를 갖춘 배터리 파트너를 확보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의 공급망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닛산 역시 안정적인 배터리 조달처를 확보했다는 면에서 전동화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닛산은 지난해 기준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4위 거대기업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일원이다. 닛산은 2010년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출시했으며 업계에서는 전기차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지난해에는 향후 3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신차 30종을 출시하고 이 중 16종은 전기차로 내놓을 계획을 발표해 전기차 전환 의지를 내비쳤다.
SK온은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후발주자로 평가받아 왔지만 포드, 현대차에 이어 닛산까지 북미 고객군을 확장하며 전기차 캐즘에도 입지를 빠르게 넓히게 됐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자문위원은 "일본엔 파나소닉밖에 없고 그 파나소닉도 기술력은 SK온보다 낮아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 닛산이 SK온과 협력해 전기차의 범위를 넓히겠다는 의도"라며 "SK온 입장에서는 시장 다변화의 성과"라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