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세계문화유산인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코앞까지 번지면서 당국과 주민들이 초비상 상태다.
안동시 등에 따르면 하회마을에는 26일 오전 10시쯤부터 연기가 유입되더니 정오가 지나면서 농도가 짙어지는 상황이다.낙동강 지류를 따라 하회마을과 인접한 병산서월에도 오전 11시 쯤부터 점차 연기가 짙어졌다. 이날 하회마을 현장을 찾은 김 모씨(53)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하다. 마스크 없이 숨쉬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하회마을을 위협하고 있는 산불은 직선거리로 7km 떨어진 의성군 안사면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바람이 하회마을 방향으로 불면서 연기가 밀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주불은 잡힌 상태로 산불이 하회마을까지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불길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소방 당국은 하회마을 종합안내소 옆에 긴급구조통제단을 설치, 차량 14대와 인력 98명을 투입했다. 소방관들은 마을 곳곳 한옥과 낙동강변 소나무 숲에서 두 시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물과 방염수를 뿌리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병산서원에서도 비슷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번 산불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잇따라 소실됐다. '천년고찰' 고운사가 큰 피해를 입으며 보물로 지정된 건축물도 잿더미가 됐다. 국가유산청과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의성 고운사는 전체 건물 30동 중 9동만 양호하고 보물인 연수전, 가운루 등 나머지는 전소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은 조선시대 영조(재위 1724~1776)와 고종(재위 1863~1907)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기로소는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다. 단청과 벽화 수준이 뛰어난 데다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도상이 남아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가운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1668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중·후기에 성행했던 건축양식이 잘 남아있는 독특한 사찰 누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보물이 됐지만, 불과 8개월 만에 화마가 덮쳤다.
대한불교조계종 측은 이날 오전 9시 기준으로 고운사의 가운루, 연수전, 극락전 등 주요 전각이 전소됐고 일주문, 천왕문 등 일부 전각은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당초 완전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 안동 만휴정(晩休亭)은 다행히 화마를 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만휴정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알려진 국가 유산이다. 불길이 번지기 전 덮어둔 방염포 덕분에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현재 소나무 일부에서 그을린 흔적이 발견되나 그 외 피해는 없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만휴정 찾은 안동시청 관계자들은 온전한 만휴정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휴정은 조선시대 문신인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 말년에 지은 정자 건물이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26일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이 회색 연기와 연무로 가득하다. 산불은 하회마을에서 직선거리로 7km 떨어진 의성군 안사면에서 발생했는데 바람이 하회마을 방향으로 불면서 연기가 밀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