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진 국민의힘 의원 '산불헬기 의무지원법' 발의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취약계층 보호법' 발의
안상훈·강선우 의원 "재난 심리 지원, 일원화해야"
여야, 정쟁 말고 민생 살펴야…'사후약방문' 그만
국회의 입법 기능은 국민의 삶과 직결됩니다. 좋은 법은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지만 반대의 경우 불편함과 불이익을 초래합니다. 이는 국회의원이 충분한 논의와 신중한 검토를 거쳐 법안을 발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법안들 중 내 삶과 가족, 일터와 사회에 의미가 있거나 울림을 주는 법안을 선별해 소개하고 그 필요성과 의의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편집자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이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앞서 산불 피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가 영남 지역을 휩쓴 역대 최악의 산불 사태에 한목소리로 피해 복구를 외치고 있다. 탄핵 정국 속 셈법이 엇갈리는 여야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논의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과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이재민, 유가족을 위로하고 피해 복구,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담은 입법 작업에 착수하는 것은 국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산불은 매년 이맘때면 전국 곳곳에서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특히 봄철에는 건조한 날씨가 극에 달하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대형 산불로 확산할 위험을 키워 나라 전체를 위기로 몰아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간 정치권의 대응을 보면 국가적 재난·재해가 매번 되풀이되는 데도 예방 대책은 물론 피해자를 지원하는 제도마저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를 제외하고 최근 몇 달간 국내에서 발생한 재난·재해만 살펴봐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재 경찰 조사 중인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사고 등이 있다. 이번 산불의 원인 역시 자연 발화 가능성은 극히 낮고 대부분 입산자 실화, 쓰레기 또는 논밭두렁 소각 등의 부주의 측면에서 발생한 사회적 재난일 것으로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를 보면 지난 29일 오후 8시 기준 이번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30명에 달한다. 경상북도에서만 주택 3285채가 불에 탔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체육관 등에 대피하고 있는 주민은 47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야는 당별로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상황을 점검하고 산불재난대응특별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국민의힘은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지정 확대와 재난특별교부세 선지급을 요청하고 특위 차원에서 당 지도부에 의원 1인당 100만원 상당의 기부 캠페인 진행을 건의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성금 모금 운동을 시작하는 한편 지난해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농어업재해대책법'을 재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개별 의원 차원에서의 법안 발의도 이뤄지고 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산불진화 헬리콥터 등 산림항공기의 구매 또는 임차 비용과 부품 교체·정비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의무적으로 지원해 대형 산불 재난에 신속 대응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산불헬기 도입 의무지원법'을 발의했다. 지난 26일 경북의 한 야산에서 40년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 A씨가 운항한 지 30년이 된 노후 기종의 헬기를 타고 산불 진화 작업에 나섰다가 추락 사망한 것이 계기다. 산림청 산불 진화 헬기의 경우 기령(비행기 사용 연수)이 20년을 초과한 헬기가 70%(33대), 30년이 넘은 헬기가 25%(12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미화 민주당 의원은 화재와 재난 상황에서 더욱 취약한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취약계층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화재예방법 개정안'과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 의원이 경북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이번 산불의 사망자 대부분은 60~90대 노인과 장애인, 환자 등 안전취약계층이지만 소방청과 행정안전부 모두 이들의 재난 피해 현황은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아 촘촘한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화재 예방·안전관리 기본계획에 화재안전취약자 지원대책을 포함하고 △화재안전취약자와 안전취약계층 지원현황을 3년마다 실태조사해 공표하도록 하며 △실태조사 결과를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에 반영하도록 하고 △화재안전취약자의 안전한 생활환경 조성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명시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들이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경북 의성, 경남 창녕·산청 등 산불피해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전국을 덮친 초대형 산불로 문화유산이 훼손되고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도 여야는 정쟁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각 당 지도부가 화재 현장을 방문해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했지만 재난 예비비,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문제를 두고 정쟁을 이어가는 형국이다.
그 사이 이재민과 유가족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정치권의 지원을 절실히 호소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충격을 받은 주민들을 상대로 심리 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계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 국내 심리지원 컨트롤 타워로는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중앙재난심리회복지원단'과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국가트라우마센터 중심의 '통합심리지원단'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운영 주체만 다를 뿐 재난 현장에서의 위기대응서비스, 재난 정신건강 위기대응 등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 혼란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대로 가다가는 피해 지원이 어려운 사례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기도 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이미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관련 혼란을 해소하고자 '재해구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앙재난심리회복지원단을 구성하는 경우 심리지원 업무의 전문성 등을 고려해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임직원을 포함하도록 하고 센터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정부의 재난 심리 지원체계를 보건복지부 중심으로 통합하는 내용의 '재해구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격화하는 정쟁에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희생자가 많이 나와야만 움직이는 정치권이 사후약방문을 거듭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민생 법안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배재현 국회 입법조사관은 지난 11일 발간한 국회 입법조사처의 '재난 피해 유가족 지원 제도의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국가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에 대한 문제가 항상 제기돼 왔다"며 "일원화된 국가 재난대응체계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재난대응 총괄조정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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