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세 아들들에 ㈜한화 보유 지분의 절반을 증여하기로 하면서 세 아들의 독자 경영, 특히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의 경영 구도에 한층 힘이 실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등으로 'K-방산'의 수출 물꼬가 트인 가운데, 시장의 신뢰를 얻어 지금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면 한화그룹의 미래는 없다는 김승연 회장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는 한화의 승계 구도로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에너지,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유통 분야를 각각 담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는 31일 김 회장이 보유한 ㈜한화 지분을 세 아들에게 증여하기로 하면서 "대규모 해외 투자 목적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를 승계와 연결시키는 억측과 왜곡은 불식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3일 한화임팩트와 한화에너지가 보유한 한화오션 보통주 지분 7.3%를 1조3000억원에 인수한 후 20일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이는 국내 기업 중 역대 최대 규모로,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밑작업이란 시각이 나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유상증자에 대해 유럽 방산 블록화, 선진국 경쟁 방산업체들의 견제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투자 실기는 곧 도태'라는 생존전략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화오션 지분 인수 역시 승계와 무관한, 두 회사의 글로벌 육해공 방산 패키지 영업을 위한 전략적 조치였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한화는 또 이번 지분 증여에 따른 승계 완료로 '㈜한화-한화에너지 합병을 위해 ㈜한화의 기업가치를 낮춘다'는 오해가 바로 잡히고,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의구심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지분 증여로 세 아들의 ㈜한화 지분율은 한화에너지(22.16%)를 포함해 42.67%가 된다. 한화에너지는 김동관 부회장 지분이 50%,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각각 25%를 들고 있다.
이번 증여는 김 회장이 방산 산업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또 한 번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2023년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고 '한국판 록히드마틴' 포석을 마련했으며, 한화오션·한화시스템은 작년 미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면서 미 방산·상선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속에서도 방산·조선업은 기대감이 높은 분야로 한화가 그 중심에 있다. 김 회장의 정공법을 택한 배경으로 꼽힌다.
김 회장은 작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에 취임했고 지난해 5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 11월 보은사업장을 직접 찾는 등 김동관 부회장의 지원 사격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지분 증여로 김동관 부회장 등이 내야할 증여세는 2218억원 규모다. 상속세·증여세법에 따라 과세된 세금은 정도경영 원칙에 따라 투명하고 성실하게 납부할 계획이라고 회사는 전했다.
앞서 2006~2007년 김승연 회장이 ㈜한화 지분 일부를 증여했을 때 세 아들은 1216억원의 증여세를 납부했다. 김승연 회장도 1981년 당시 역대 최대 수준인 277억원을 상속세로 냈다.
과세기준 가격은 한달 후인 4월30일 기준 전후 각각 2개월 주가 평균가격으로 결정된다. 상장회사 내부자 주식 거래 사전 공시제도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주가가 낮은 시점에 증여를 결정했다거나, 주식 가격을 의도적으로 낮췄다는 주장은 가능하지 않게 됐다.
㈜한화 주가는 지난 2월10일 자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오션 지분 일부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뒤 크게 올라 3월10일 5만2300원을 기록했다. 그 전까지 3년간 ㈜한화 주가는 2~3만원 수준에 머물렀으며, 5만원을 넘어선 것은 2017년 8월 이후 8년만이다. ㈜한화 주가는 31일 종가 기준 4만950원이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김승연(왼쪽 두 번째) 한화그룹 회장이 장남인 김동관(왼쪽 세 번째) 부회장과 작년 5월20일 창원사업장에서 생산하는 주력 제품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화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