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기아가 6개월 연속 미국 판매량이 월별 신기록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완성차들의 미 판매량이 큰 폭 증가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달부터 시행하는 수입 자동차 25% 관세 시행 전 '밀어내기' 물량이라는 해석이 나와, 이달부터 수출 실적이 대폭 쪼그라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차 가격이 높아지면서 수요가 정체되고, 완성차 업체들도 인센티브 등 비용 부담이 커지는 만큼 관세 부메랑이 본격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미국판매법인은 지난달 8만7019대, 기아미국법인은 7만8540대를 각각 판매해 작년 동월 대비 13.1% 증가한 실적을 기록했다. 양사 모두 전년 동월 대비 6개월 연속 최대 판매량 경신이다. 양사의 전월 대비 판매 실적은 30% 이상 늘었다.
1분기 기준으로는 현대차·기아 모두 전년 동기보다 10% 이상 늘었다. 미국을 제외한 시장에서 현대차의 글로벌 판매량이 5.4%, 기아가 0.9% 각각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미국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추세를 다른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도 다르지 않다. 도요타는 지난달 미국서 23만1000대를 팔아 전년 동월보다 7.7% 늘었고, 제네럴모터스(GM)는 1분기 기준 69만대를 판매해 전년보다 16.7% 증가했다.
이는 이달 3일부터 수입 자동차에 부과되는 25% 관세를 앞두고 완성차 업체들이 판매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풀이된다. 또 미 소비자들도 관세 부과가 본격화될 경우 찻값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수요가 몰린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현대차의 경우 랜디 파커 미 판매법인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현지 딜러들에게 서신을 보내 "현재의 차 가격은 보장되지 않으며 4월2일 이후 도매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변경될 수 있다"고 전해 인상 가능성을 암시했다.
슈퍼카 브랜드인 페라리는 지난달 관세 부과에 일부 차조의 미국 판매 가격을 10% 올리겠다고 발표했고, 메르세데스 벤츠는 미국서 저가형 모델 판매를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블룸버그통신 보도가 나왔다.
윤혁진 SK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관세가 한동안 유지된다면 업계 전체에서 신차 가격이 모델당 3000~1만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 자동차 시장도 고용 부진과 신차 가격 상승으로 2분기부터 부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미국에 4년간 31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등 현지 생산 확대로 대응하기로 했다. 하지만 작년에만 미국에 101만대 이상을 수출한 만큼 관세 영향을 온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경쟁사의 인상 여부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인상폭도 제각각 다를 수 있어 인센티브 출혈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도요타의 경우 가격 유지로 방향을 잡았고, 폭스바겐은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가격을 올려서 수익을 보장할지, 이런 점이 판매나 매출 감소로 이어질지 여부와 함께 시장 점유율, 수익성, 소비자 반응 등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완성차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자동차 수출은 62억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1.2% 증가했는데, 미국 수출이 실적은 견인한 점을 감안하면 이달부터 수출도 경고음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 수출은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한국GM도 한 축을 맡고 있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자동차 산업에 25％ 관세를 매길 경우 올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작년 대비 18.59％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관세 이슈가 제기된 작년 말부터 글로벌 완성차들은 올해 1분기를 최대한 활용해 밀어내기로 총 동원했다"며 "이달부터는 미국으로 가는 물량이 확 줄어들 수 있다. 1분기 밀어내기 물량으로 2~3개월은 버티겠지만 그 이후에는 관세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기간 컨트롤타워 구축 등으로 협상을 진행해 중앙 정부나 지자체가 보상을 해준다던지, 패키지 딜을 통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며 "자동차 생태계가 무너지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관세는 장시간 이어지기 어려운 정책인 만큼 그 동안 대응 방안을 확고히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