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용 패키징 장비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한화세미텍과 협력 관계를 넓히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심지어 한화세미텍의 장비를 기존 공급사인 한미반도체 장비보다 높은 가격에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공급망을 다변화 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달 한화세미텍에 총 420억원 규모의 TC 본더 장비를 발주했다.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 HBM 공급망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TC 본더는 HBM용 D램을 수직 접합할 때 사용되는 패키징 장비로, 이 장비 없이는 HBM을 만들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엔비디아향 HBM3E 8단·12단 제품을 한미반도체 TC 본더 장비로만 만들었다. 당시 제품 양산 실력을 가진 업체가 한미반도체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가격 협상력을 고려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SK하이닉스가 기존 한미반도체의 제품보다 더 높은 가격에 한화세미텍 장비를 발주했다는 점이다. 반도체 장비업계에서 두 번째 공급사가 첫 번째 공급사보다 높은 제품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한 반도체 장비기업 대표는 "시장 후발 주자는 첫 번째 공급사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두 번째 공급사는 아직 양산 실력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있어 디스카운트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오는 2026년 개화할 HBM4E(7세대) 공급망 관리를 미리 준비 중인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내년 하반기 HBM4E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HBM4E에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적용될 것으로 업계에선 본다. 하이브리드 본딩 개화에 맞춰 TC 본더 장비 시장 규모도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반도체 장비기업 다른 관계자는 "두 번째 공급사에게 더 좋은 조건의 발주를 줬다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지금 당장 보다는 하이브리드 본더 시장에서 협상력을 갖기 위해 두 번째 공급사를 전략적으로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한화와 SK 그룹 간 협력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화그룹은 반도체 장비 산업을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꼽고 육성하고 있다. 한화세미텍은 이런 배경하에 지난 2월 한화정밀기계에서 이름을 바꿔 출범했다. 양 그룹 간 협력이 이뤄져 한화세미텍이 비교적 좋은 조건에 SK하이닉스 HBM 공급망에 합류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협력사 공급망 전략에 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박순원기자 ssun@dt.co.kr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에 공급하는 TC본더 'SFM5-Expert' 제품 모습. 한화세미텍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