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트럼프 관세폭탄에 격앙
EU "부당조치에 이익 수호…
규칙기반 무역시대 이제 끝"
美 언론·전문가도 비평 세례
"트럼프, 美 번영 날려버렸다"
EU "부당조치에 이익 수호…
규칙기반 무역시대 이제 끝"
美 언론·전문가도 비평 세례
"트럼프, 美 번영 날려버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전 세계를 상대로 마구잡이 관세 포문을 열자 세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세계 2차 대전 후 스스로 시장을 내주며 규칙기반무역을 이끌어온 관용적 패권국 미국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한탄과 아쉬움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세계경제의 후퇴가 적어도 트럼프 재임 4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데에 이론이 없는 상황이다.
세계 각국은 제각각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나마 힘 있는 일부 국가들의 대응은 강력하다. 미국 수출품에 20∼40%대의 고율 관세를 물게 된 유럽 제국은 즉각 불만을 표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전역의 수입품에 2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유럽 지도자들은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해방의 날'이라고 부를지 몰라도, 일반 시민 관점에서 보면 오늘은 '인플레이션의 날'"이라며 미국의 관세를 '부당하며 불법적이며 불균형적 조치'로 규정했다.
유럽의회 제1당 격인 유럽국민당(EPP)의 만프레트 베버 대표도 "미국 친구 여러분, 오늘은 해방의 날이 아니라 분노의 날"이라면서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는 공정 무역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비롯된 공격이며 대서양 양쪽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유럽은 단결하여 자국의 이익을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공정하고 확실한 대화에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아일랜드의 마이클 마틴 총리도 미국의 관세 결정에 "매우 유감스럽다. 관세는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굳게 믿는다"며 아일랜드 일자리와 경제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돈독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필연적으로 서방을 약화하고 다른 글로벌 플레이어를 선호하게 될 무역전쟁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우리는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멜로니 총리가 말한 '다른 글로벌 플레이어'는 의심의 여지없이 중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관세가 발표된 날 '트럼프의 새로운 보호주의 시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관세 부과 대상 국가들이 광범위한 보복 관세로 대응할 경우 국제무역의 위축과 세계 경제의 침체, 혹은 그보다 더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결정은 '관세 장벽' 뒤에 숨어 경쟁을 회피하는 기업이나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그 결과 독점의 이익은 커지는 반면 경쟁력과 혁신 동력은 약화할 것이라고 봤다.
WSJ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주도국 역할을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미국이 수십 년간 자유무역의 확대를 통해 번영을 누려 왔다는 점을 상기시킨 뒤 "이제 그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어 "이는 모든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정치적 이득을 위해 세계시장을 나눠 먹으려 드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1930년대의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 Thy Neighbour Policy)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근린 궁핍화란 타국의 경제를 희생시키며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경제 정책을 일컫는다.
무엇보다 WSJ는 동맹과 무역 상대방으로서의 신뢰를 포함한 '소프트파워' 상실로 인한 지·정·경제학적 손실은 막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동맹들을 향한 중국의 구애가 이어진다면, 이들이 더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중국으로의 기술 수출 통제나 중국 기업 규제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세계 무역이나 경제에서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미국은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상호관세는 국제적 사건에 좀처럼 발언을 삼가는 스위스마저 격앙케 했다. 상호관세율 32%를 통보받은 스위스의 카린 켈러 주터 대통령은 "(연방의회는) 다음 단계를 신속하게 결정할 것이다. 국가의 장기적인 경제적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 국제법 준수와 자유무역은 여전히 핵심 가치"라며 신속 대응을 시사했다.
10%의 기본 관세만 부과받은 나라들도 반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호주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이런 부당한 관세에 대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될 대상은 미국 국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정부가 상호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려는 이유"라며 "우리는 물가상승과 성장세 둔화로 이어지는 바닥을 향한 경쟁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을 비판했다.
한편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총리와 외교장관 등이 총출동해 미국에 관세부과 예외를 요청했던 일본도 충격에 빠졌다. 한국보다는 낮지만 24%의 상호관세를 맞은 것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번 조치를 비롯한 미국 정부의 광범위한 무역 제한 조치는 미일 양국의 경제 관계, 나아가 세계 경제와 다각적 무역체제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이들 국가들의 반발은 중국에 비해선 약과다. 상호관세 34%를 포함해 트럼프 행정부 들어 가장 먼저 10%+10%의 관세를 부과받았던 중국은 모두 54%의 관세 폭탄은 맞게 됐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 상호관세 부과발표에 "단호히 반대하며 반격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무차별 관세에 무역 상대국들이 보복 관세 등 맞대응에 나서면 전 세계 경제가 큰 혼란에 휩싸이고 보호무역주의의 확산 등 국제 통상 질서가 급변하는 분기점에 들어섰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미국 주도의 규칙 기반 시스템 위에 구축됐던 자유롭고 폭넓은 국제 무역의 시대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라사드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무역상대국이 이득을 본 규칙을 수정하기보다 국제무역을 규율하는 시스템을 날려버리는 편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데베어그룹의 나이절 그린도 마켓워치에 "세계무역에 지진이 발생한 날"이라면서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세계를 더 번영하게 했던 시스템을 트럼프 대통령이 날려버리고 있다"고 밝혔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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